태권도 반세기

 

각론 되는 바와 같은 엄연한 사실 때문에 견강부회(牽強附會)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태권도 역사가 재정립되어야 합니다. 태권도를 유구한 5000년의 역사를 가진 우리 고유의 전통 무도(예)라고 주장하는 것은 정보통신(IT) 사회인 현시점에서는 허구입니다.

 

발전(세계화)이란 명분을 내세워 앞만 보고 달려왔다면 이제는 내실을 다져야 합니다. 모방도 창조입니다. 가라테를 모체로 근대 무술로 시작된 태권도가 스포츠라는 성격으로 세계화된 것 그 자체로 태권도는 우리 것이 분명한 것입니다.

 

이제는 세계화된 태권도가 태권도 본연의 모습인 무도(태권도)로서 새롭게 태어나 무도태권도로 다시 세계화된 태권도(무도)의 참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관을 중심으로 살펴본 태권도 형성사','태권도 반세기','태권도 現代史','노병직 관장의 친필 서한'을 참고로 해방과 더불어 태동 돼 현재에 이른 태권도의 근대사를 재구성(편집)해 각론 합니다.

 

태권도 태동과 분열

심화되는 무덕관의 내부 분열

 

1960년대 협회 구성(통합)을 놓고 내부 분열이 가장 심했던 곳은 무덕관(武德館)이었습니다. 지도관(智道館)도 협회 통합을 놓고 한 때 관장 윤쾌병, 대표 이종우라는 분열 양상을 보이기도 했지만 무덕관 처럼 심각한 편은 아니었습니다. 무덕관이 이처럼 극심한 분열 양상을 보인 것은 황기 관장의 고집과 독선 때문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입니다.

 

태권도 한 원로는 황기에 대해 학문을 좋아하고 성품이 곳았지만 마음 씀씀이가 좁고 고집이 세서 주위 사람들을 폭넓게 껴안는 인물이 아니었다며 제자(후배)들에게 협회 통합 주도권을 빼앗기자 고집스럽게 독자노선(수박도회)을 고집했다고 술회합니다.

 

여하튼 무덕관 분열이 최고조로 표면화된 것은 1965년 3월 중순입니다. 태수도협회와 수박도회로 나뉘어 분열 상태에 있었던 태권도계는 최홍희가 복귀하면서 그의 주도로 다시 통합을 모색하게 됩니다.

 

몇 차례 모임을 갖고 의견을 조율한 각 관(계파) 대표들은 통합선언서, 통합합의서, 통합취지서에 합의해 1965년 3월 18일 대한체육회(당시 서울시청 건너편) 대강당에서 통합선언식을 거행했습니다.

 

황기 관장도 협회 통합에 동조, 위의 3가지 통합서에 날인 한 상태였습니다. 사건은 통합선언을 마친 다음 날 벌어졌습니다. 황기가 통합선언을 '무효' 라면서 번복했기 때문입니다. 뜻밖의 상황에 처한 무덕관 2인자 홍종수는 무덕관의 앞날에 대해 ‘이거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앞이 깜깜해졌다. 이런 식이라면 황기 관장의 위상도 무너질 판이다고 했다고 전해 집니다.

 

홍종수 관장의 회고는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통합선언식이 있은 다음 날 오전 10시경, 내가(홍종수) 무덕관 중앙도장에 들어서자 황기 관장이 대뜸 어제 통합 선언한 거 무효 선언해야겠어라고 말하더군, 난 하도 어이가 없어, 아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어제 통합선언을 하고 하루 만에 무효 선언을 한다는 건 무도인의 도리가 아닙니다.

 

무도계의 큰 위치에 계신 분이 명분 없이 통합선언을 번복하는 건 신의를 저버리는 일이잖습니까? 라고 말을 했어, 그러자 황기 관장은 잠시 침묵하더니, 아니야, 최홍희에게 전화를 걸어야겠어라고 하며 전화를 나보고 걸라고 하더군,

 

내가 전화를 걸지 않자 손수 최홍희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나, 황기인데 어제 통합 선언한 것 오늘 날짜로 무효를 선언합니다라고 하더군. 최홍희가 갑자기 왜 이러십니까?라고 반문 했지만 황기 관장은 자기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끊었어.

 

황기는 당시 대한태수도협회 회장이었던 최홍희와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최홍희는 무도 본류(출신성분)가 불분명한 데다가 군을 업고 세력을 확장, 민간 도장과 마찰을 빚어 대다수 사람들이 좋게 여기지 않았다"고 회고합니다.

 

박철희는 황기 관장을 협회에 가입시키려고 설득할 때 최홍희가 회장을 맡으면 태권도가 발전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협회 참여를 거부했다고 합니다.

 

‘황기사태(무효선언)'에 대한 홍종수 관장의 또 다른 회고에 의하면 황기 관장과 마주 앉아 무효선언을 하면 안 된다고  충심으로 설득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황기 관장은 요지부동이었다고 합니다. 그런 황기관장의 태도에 이 사람이 역사적인 오류를 범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을 했어, 그래서 재차 황기 관장에게 무효 선언을 철회 할 것을 종용했다고 합니다.

 

홍종수 관장은 무효선언은 신의를 저버리는 일일 뿐 아니라 그동안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면서 통합을 이뤘는데 하루 만에 무효 선언한다는 것은 앞으로 무덕관의 입지가 흔들리게 되는 것이라고 거듭 간곡하게 만류했지만 황기 관장은 요지부동이었다고 합니다.

 

 ‘난 절대로 통합 안 해’라며 버텼다고 합니다. 황기 관장의 무효 선언이 전해지자 무덕관에 적(籍)을 두고 있던 김영택 변호사(무덕관 법무 대리인)도 가세해 황기 관장을 설득했지만 실패를 하자 김봉환과 함께 무덕관을 대표해 황기를 배제하고 협회 참여(통합)를 적극적으로 도모(가담)합니다.

 

이에 대해 홍종수 관장은 이렇게 회고합니다. 황기 관장을 대신해 전화를 받았는데 김영택 은 극도로 흥분된 상태였어, 김영택은 거친 말투로 아니, 자기가 시켜서 통합을 적극 추진했는데 이제 와 이럴 수가 있습니까? 밤잠도 못 자며 고생한 끝에 통합을 이끌어 낸 우리들은 뭡가 됩니까? 김영택은 한마디 상의 없이 황기 관장이 혼자 결정했다며 비분강개했어,

 

김영택은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황기에게 욕설을 하며 전화를 연결해 달라고 했어, 그래서 난(홍종수) 아무리 화가 나도 스승인데 욕까지 한다는 건 제자의 도리가 아니다라며 김영택을 자제시키고 전화를 끊게 한 후 다시 황기 관장을 설득하기 시작했어, 김영택이 완곡하게 무효 선언을 취소하라고 요구합니다. 무효결정을 취소하는 것이 대의를 위해서, 그리고 관장님을 위해서 좋을 듯합니다.

 

관장님을 믿고 통합을 추진한 사람들도 생각해 주셔야죠 라고 했어, 그런데도 황기 관장은 절대로 그렇게 할 수 없다며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어, 이때 김영택이 또 다시 전화를 해 왔어,

 

전화 내용은 무덕관 고단자들이 황기 관장의 무효 선언에 대처하기 위해 긴급 고단자 회의를 자신(김영택) 사무실에서 주재한다는 것이었어,

 

이때가 3월 18일 정오 무렵이었다고 합니다. 오전(10시)부터 황기와 독대하면서 무효 선언을 번복하라고 설득하던 홍종수 관장도 황기 관장이 번복할 조짐을 보이지 않자 결국 김영택의 변호사 사무실로 갔습니다. 김영택 변호사 사무실에는 15명의 무덕관 고단자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황기의 무효 선언에 화가 나 있던 김영택이 분을 삭이지 못하고 긴급 고단자 회의를 주재한 것입니다. 모인 고단자들은 황기 관장의 무효 선언에 배신감을 느낀 사람들이었습니다. 긴급 고단자 회의에서는 처음부터 난상토론이 벌어졌습니다.

 

홍종수 관장은 당시 고단자 회의에 대해 황기 관장의 독단적인 무효 선언에 무덕관 고단자들이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와 앞으로의 무덕관 진로를 고민하는 자리였다고 회고했습니다.

 

고단자들은 황기 관장의 개인적인 견해를 무덕관 전체의 뜻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며 강하게 반발했고 토론 끝에 만장일치로 통합 약속을 이행하자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에 따라 황기는 무덕관 고단자들에게 신망을 잃고 급기야 무덕관에서 출관(出館)을 당하는 수모를 격습니다.

 

그런 상황(황기 출관)에 대해서 홍종수 관장은 고단자 회의에서 도출된 결론이 올지 안은 일이라고 반대를 합니다. 홍종수 관장은 생각이 다르다고 조직의 법통을 아랫사람들이 의기투합해 끊어낼 수 없다는 이유로 황기 관장의 출관을 반대 합니다.

 

무덕관을 창설해 20년 가까이 이끌어 오신 분을 내친다는 것은 제자들의 도리에 어긋난다며 마지막으로 황기 관장을 찾아 뵙고 무효 선언을 철회하자고 설득하자고 고단자들을 설득합니다.

 

그래서 다음 날 오후 1시에 김영택 변호사 사무실에 무덕관 고단자들(15명)이 다시 모여 난상토론을 합니다. 전날과 같이 김영택을 비롯한 대다수의 고단자들은 황기의 출관을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홍종수 관장은 마지막으로 제자의 도리를 하자며 고단자들을 설득, 김영택, 김봉완, 김해동, 김춘도 등 4명과 함께 황기 관장이 있는 무덕관 중앙도장으로 찾아가 탈퇴 선언을 철회할 것을 마지막으로 설득(요청)하기로 합니다.

 

그러나 김영택을 비롯한 대다수 고단자들은 황기 관장은 절대로 철회를 안 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다만 홍종수 관장의 설득에 대해 예의를 갖추기 위해서 응했던 것입니다.

 

황기 관장을 설득한다는 것은 소귀에 경 읽기란 것을 이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은 이미 황기 관장이 무덕관 중앙도장 입구에 "대한수박도회" 간판을 내걸었기 때문입니다.

 

홍종수 등 5명 제자들과 마주한 황기 관장은 그들의 종용(설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결정한 무효선언을 번복하지 않았습니다. 홍종수 관장은 진퇴양난에 빠진 격이 되었습니다.

 

황기 제명(출관)을 주장하는 고단자들을 설득, 어렵게 자리를 주선했지만 황기 관장은 출관(제명)이 돼도 무효 선언을 번복할 수 없다며 자신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김영택을 비롯한 같이 방문한 고단자들은 고약한 늙은이라고 욕을 하고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고 합니다. 엄격하기로 소문난 무도계의 사제지간(師弟之間)이 무너지는 순간이었습니다.

 

홍종수 관장은 당시를 무덕관 최대의 비극적인 상황이 일어난 상황(현장) 이었다고 회고했습니다.

 

결국은 무덕관 중진들은 무덕관 최고 의결 기구인 시도 본 관장 회의를 개최해 황기 관장을 제적시키고, 홍종수를 관장으로 추대합니다. 그러나 홍종수 관장은 황기 관장에 대한 무도인으로서의 도리에 어긋난다는 생각에 결정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고 정창영과 이강익을 대표위원으로 추대합니다.

 

태권도정보연구소 / 청호태권도장 / 신성환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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