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 반세기
각론 되는 바와 같은 엄연한 사실 때문에 견강부회(牽強附會)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태권도 역사가 재정립되어야 합니다. 태권도를 유구한 5000년의 역사를 가진 우리 고유의 전통 무도(예)라고 주장하는 것은 정보통신(IT) 사회인 현 시점에서는 허구입니다
발전(세계화)이란 명분을 내세워 앞만 보고 달려 왔다면 이제는 내실을 다져야 합니다. 모방도 창조입니다. 가라테를 모체로 근대 무술로 시작된 태권도가 스포츠라는 성격으로 세계화된 것 그 자체로 태권도는 우리의 것이 분명한 것입니다.
이제는 세계화된 태권도가 태권도 본연의 모습인 무도(태권도)로서 새롭게 태어나 무도태권도로 다시 세계화된 태권도(무도)의 진면목을 보여야 합니다.
총 68회에 걸쳐 '관을 중심으로 살펴본 태권도 형성사','태권도 반세기','태권도 現代史', '노병직 관장의 친필 서한'을 참고로 해방과 더불어 태동돼 현재에 이른 태권도의 근대사를 재구성(편집)해 각론 합니다.
태권도 태동과 분열
대한태수도협회 활동상
대한태수도협회의 시급한 문제는 각 관(館)별로 시행되고 있는 승단심사를 통합하는 것이었습니다. 1962년 11월 11일 국민회당에서 열린 ‘제 1회 전국승단심사대회에서 회장 채명신은 대회사를 통해 태수도는 그동안 각 유파별로 자파(自派)만을 위한 발전을 꾀하고 서로 고집과 편견 등으로 통합을 이루었다. 며 과거 자파도장에서 실력이 있든 없든 임의로 단을 부여했지만 협회 명칭 아래 공정하게 심사해서 실력 있는 공인단(公認段)을 주게 돼 경사가 아닐 수 없다고 개회사를 합니다.
제 1회 전국승단 심사대회의 식순을 보면, ▶개회 ▶국민의례 ▶혁명공약 ▶개회사 ▶대회장 인사 ▶심사에 대한 주의 ▶ 심사 ▶강평 ▶폐회사 ▶만세삼창 ▶폐회 순이었습니다.
한편, 제 1회 승단심사 대회와 관련된 자료를 보관하고 있는 홍정표는 심사종목에 대해 이렇게 증언합니다.
승단심사는 형(型), 대련(對鍊), 논문(3단 이상) 이었어요. 대련은 호구를 착용하고 시합을 하는 형태였죠. 초단 응심자는 평안오단형(平安五段型), 철마초단형(鐵馬初段型), 내보진초단형(內步進初段型), 자원형(慈阮型), 화랑형(花郞型) 등 이었습니다.
승단심사 임원은 대회장 채명신, 심사위원 이남석, 이종우, 엄운규, 박철희, 이영섭, 남태희, 경기위원장 현종명, 심판위원 홍정표, 김순배, 김수진, 김선구, 이병로, 배영기, 고재천, 이교윤, 백준기등 25명이었습니다. 심사종목은 형(型), 시합(겨루기), 논문(3단 이상)이었는데, 경기 개요는 다음과 같습니다.
1. 호구용 시합으로 한다. 2. 호구는 동체(胴體), 다리정강이에 착용하고 손에는 장갑을 낀다. 3. 심판은 주심 1명과 부심 4명, 배심원 2명으로 구성한다. 4. 주심은 호각으로 승부의 판정과 시합의 주도권을 담당한다. 5. 부심은 시합장 사각에 앉아 채점하고 청. 홍기로 승부의 판정을 표시한다. 6. 배심원은 본부석에서 주심과 부심의 판정을 시정한다. 7. 시합장은 사각기경 팔미(八米=8미터)로 정한다. 8. 시합시간은 1회 3분으로 한다. 9. 승단 응심자는 자신이 응심하는 단의 형(型) 중 2종을 선택했다. 10. 2단 지정형은 발한형태(拔寒型太), 철기이단형(鐵騎貳段型), 내보진이단형(內步進貳段型), 기마이단형(騏馬貳段型), 충무형(忠武型)이었고, 11. 3단 지정형은 십수형(十手型), 발새형(拔塞型), 연비형(嚥飛型), 단권형(短拳型), 노패형(鷺牌型), 계백형(階伯型), 을지형(乙支型), 12. 4단 지정형은 철기삼단형(鐵騎三段型), 내보진삼단형(內步進三段型), 기마삼단형(騎馬三段型), 자은형(慈恩型), 진수형(鎭手型), 암학형(岩鶴型), 진동형(鎭東型), 삼일형(三一型), 장권형(長拳型),
13. 5단 지정형은 공상군형(公相君型), 관공형(觀空型), 오십사보형(五十四步型), 십삼형(十三型), 반월형(半月型), 팔기권형(八騎拳型) 등이었습니다.
필자는 실제로 적시한 형들에 대해서 시연을 해 본 경험이 없습니다. 문헌상과 선배 태권도인들이 시연하는 것을 일부 본 것이 전부입니다.
당시 형(型. 품새)은 가라데 기술체계를 그대로 답보한 것이었고, 대련(對鍊 겨루기)도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다만 최홍희가 1950년대 말 창안해 오도관에서 수련되던 창헌류 중의 하나였던 계백형, 충무형 등이 포함된 것이 이채롭다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최홍희의 영향력을 반증하는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홍정표는 창헌류에 대해 “역사적 위인이나 용맹한 동물에서 단명(段名)을 따왔는데, 한때 이승만 대통령에게 아부할 양으로 운암형도 만들었다며 최홍희의 권력지향성을 지적하기 합니다.
3단 이상 응심자는 논문(필기)에 응심해야 했는데, 제 1회 승단심사 논문제목은 <각 유파형 통일에 대한 발전과 그 방법>이었습니다.
논문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당시 ‘대한태수도협회’가 관 별로 시행되는 형 통일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논문심사는 시간이 지나면서 유명무실해 졌습니다. 현재 고단자 심사에서도 논문 제출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당시 일선도장의 수련은 무도인이 갖춰야 할 기본정신과 수련동작에 주안점을 두어 수련되어 졌습니다. 수련은 가라데 기술체계를 도입한 형 위주로 이뤄졌고 대련은 지도사범의 성향에 따라 관 특유의 기술이 수련되어 졌습니다.
태권도계는 공수도, 당수도, 수박도, 태권도 등 각 관(館)에 따라 명칭이 달랐고, 품새(형)와 겨루기(대련)의 기술체계도 관 특성에 따라 제 각각이었습니다.
때문에 승단문제는 협회 창립 이후 가장 큰 문제로 대두되었습니다. 각 계열관에서 우의를 점하기 위해 유단자를 남발했기 때문입니다. 채명신 회장은 당시 승단문제와 관련 “각 관의 유단자 조정 품새가 가장 큰 문제 거리였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각 관별로 실시하던 형, 대련, 격파 등의 기술차이를 통합(없애기)하기 위해 심사 대표단을 구성했다고 회고합니다
다음 26부에서는‘경기태권도의 발전’에 대해 각론합니다.
태권도정보연구소 / 청호태권도장 / 신성환 관장 태권도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http://www.riti.net - 태권도정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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