虛實篇(허실편) 27강 “主導權을 잡아라”

신성환

 

여러분과 같이 손자병법을 토파(공부)하고 있는 “신성환 관장”입니다. 손자병법을 토파하고 있는데 꽤나 많이 진행되었습니다. 총 13편중 여섯 번째 편인 ‘虛實篇’편에 들어갑니다.

 

오늘 각론(토파) 할 내용은 허실에 관한 것입니다. ‘허실’이란 말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빌 ‘허’ 채울 ‘실’, ‘허실편’이 손자병법 13편 중 여섯 번째 편입니다.

 

손자병법 전체 중에서 반을 각론(토파) 한 것입니다. 꽤 많이 토파(공부) 한 것입니다. 중반전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허실’이 의미하는 것이 뭐예요? 비었다, 채웠다. 사람이든 조직이든 빈 곳이 있으면 찬 곳이 있습니다.

 

물론 모두 빈(허) 경우도 있습니다. 꽉 찬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 실한 회사가 있는가 하면 부실한 회사(기업)도 있습니다. 배추도 실한 배추가 있는가 하면 속이 부실한 배추도 있잖습니까?

 

속이 알찬 것과 부실(허한)한 것, 이것이 허실입니다. ‘허실’이라는 것은 상대방 조직과 내 조직을 비교할 때 내 조직이 갖고 있는 역량이 상대방 조직의 역량에 있어 ‘실한’ 역량과 부실한 역량이 있는 것입니다.

 

즉 나와 상대의 찬 곳(실한)과 빈곳(허한)을 찾아내란 말입니다. 그리고 내가 갖고 있는 강한 것으로 상대의 ‘허’한 것, 즉 부실한 곳을 향해 공격(돌격)하란 말입니다. 당태종이라고 아시죠.

 

당태종은 손자병법을 굉장히 좋아했습니다. 당태종 왈 손자병법 13편중에서 ‘허실편’이 가장 요체다. 손자병법에 있어서 가장 핵심이라고 선언적으로 말을 합니다.

 

허실이라고 하는 개념에 형(모양)과 세 개념을 결합해  손자병법의 3위 일체라고 말(주장)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손자병법하면 허실, 형, 세 이 세 가지로 조직을 운영하는 시스템이라고 보고 손자병법을 토파(연구)하는 분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허실편의 특징이 무엇이냐면 ‘避實擊虛(피실격허)’ 이 네 글자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避實擊虛(피실격허)란 상대방이 꽉 차 있는 곳은 피하고, 상대방의 비어있는(부실한) 곳을 공격하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좀 야비합니다. 당당하지 못한다는 느낌이 듭니다. 상대와 싸우는데(대적) 있어서 당당하게 대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빈(부실한) 곳을 치라고 하는 것은 ‘도덕군자’로서 도리에 어긋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차마 그렇게는 못 하겠다고 많은 분들이 과연 그렇게까지 해서 이겨야 되는가? 라는 의구심을 가질 것이란 생각합니다. 여러분들! 그런 생각 안 드세요? 필자는 인간의 근본적인 모습으로 돌아와서 보면 과연 상대방의 빈 곳을 나의 강한 것으로 공격한다는 것, 그렇게 이겨야 하나 하는 그런 생각이 좀 듭니다.

 

그래서 고민이 좀 됩니다. 하지만 어차피 집단과 개인 간의 갈등은 항상 있습니다. 그 갈등을 풀기 위해서는 즉 전쟁이라고 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것이 아니겠어요?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어떻게 해야 해요?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최선을 다한 다는 것은 이겨야 하는 것입니다. ‘여씨춘추(呂氏春秋)’라고 있습니다. 여씨춘추는 기원전 239년 중국 진나라의 재상인 여불위가 주도하여 편집한 백과사전입니다. 당시 제자백가 집단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여람(呂覽)’이라고도 알려진 책입니다.

 

‘여불위’는 진시황제의 생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것은 사마천이 본 역사적인 사실로 실제로 그런지는 아무도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여하튼 진나라 진시황제의 생부라고 알려져 있는 ‘여불위’라고 하는 재상이 편집한 ‘여시춘추’는 진나라 시대 통일왕국과 관련한 책입니다.

 

그 책에서 ‘전쟁이라고 하는 것은 필요악이다’고 말을 합니다. ‘여시춘추’의 논리가 그것입니다. 여시춘추 ‘맹추기 탕병편’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인열폐식’ 무릇 밥을 먹다보면 목이 막히는 수가 있다.

 

이 말을 토파하면 ‘밥’은 인간에게 누구나 필요한 거다. 밥 먹고 체했다고 해서 밥을 안 먹을 수는 없다. 물, 불은 인간에게 없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홍수가 나서 집이 떠내려가고, 불이 나서 집이 다 탔다고(망했다)해서 물과 불하고 안 싸울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 것입니다. 그러니까 전쟁, 전쟁이라고 하는 것이 인간에게 피해를 주지만 전쟁을 통해서 상대방과의 갈등을 해결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봤을 때는 전쟁이나, 물이나, 불이나, 밥이나, 결국은 이것이 인간에게 있어서 필요한 것 아니냐 라고 하면서 이런 논리를 전개 합니다.

 

결국 전쟁은 물과 불처럼 잘 사용하면 인간에게 도움이 된다. 하지만 잘못 사용했을 때 독약이 될 수 있다고 하면서 전쟁을 하는(사용하는) 명분을 말하고 있는 것 입니다. 그래서 ‘정의’의 전쟁은 좋은 약과 같다고 말을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전쟁과 물의 필요성을 비교한다는 것은 다르다는 의구심이 듭니다. 그래서 여시춘추에서는 이렇게 말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인간은 사는 것이 다 전쟁이라고 합니다.

 

이 말에 동의 안 하실 분 계세요? 사는 것이 전쟁이란 것에 대해서. 예를 들면 누군가를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 사람이 싫어 졌습니다. 상대가 싫어졌어요. 근데 그 싫은 마음이 어디에만 있어요? 아직 바깥으로 안 나가고 어디에 있어요.

 

내 마음에 속에 있는 것도 전쟁이 아니겠습니까? 상대에 대해서 싫은 것이 내 마음속에 존재해 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해서 어쩔 수 없이 내색을 안 하고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싫은 것을 상대에게 보이지 않는 것도 상대와 전쟁을 하는 것입니다.

 

뉴스를 보면 정치 지도자가 서로 간에 으르렁대고 있는 것 종종 보잖습니까? 서로 반목하고 질시하는 것 이것도 전쟁인 것입니다. 직접적으로 상대를 때리지만 않았지 마음에 있는 반목과 질시, 상대에 대한 싫은 감정이 마음에 있으므로 해서 결국은 어떻게 표출됩니까?

 

사람은 마음에 담고 있으면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눈빛으로 나타납니다. 어떻게? 상대에 대한 질시와 반목이 눈빛으로 나타나는 것 이것도 전쟁의 한 형태인 것입니다. 상대에게 눈을 흘겨요. 그리고 거기서 더 발전하면 얼굴빛이 달라집니다.

 

얼굴이 붉어집니다. 거기서 한발 더 나가면 오가는 ‘말(言)’이 거칠어집니다. 야! 이놈아(인간아) 뭐라고! 하면서 험악한 말들이 오가게 됩니다. 험한 말이 더 발전하면 서로가 밀고 당기게 됩니다. 밀고 당기는 것이 뭐예요? 면발이라고 하잖습니까?

 

치고받는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뭐! 뭐라고 하면서 서로 간에 밀치고 잡고 발로 차고 손으로 때리고 하는 것입니다. 서로 치고받고 하는 상황에서 더 나가면 집단으로 싸웁니다. 이제는 개인적인 적개심을 넘어 집단으로 적개심을 상대 집단에 퍼붓습니다. 이것이 바로 상대에 대한 공격 전쟁이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상대방 조직과 상대방에 대해서 내가 싫은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이 처음에는 눈빛으로 나타나고 그 다음에는 얼굴빛으로 나타나고 말(言)로 나타난 다음에는 밀치고 당기고 발로 차고 손으로 때리고 집단으로 치고받고 하다가 결국에는 상대를 공격하는 공격전쟁에 이르게 되는데 이런 과정(상황)이 다 뭐예요?

 

전쟁인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가슴 속에서부터 전쟁이라고 하는 실제를 갖고 있고 그런 것 자체가 다 전쟁인 것입니다. 전쟁! 너무 슬퍼집니다. 하지만 그것을 인정하란 것입니다. 전쟁은 어떻게 보면 인간의 본능입니다.

 

아이들도 서로 먹는 것(밥)을 본능적으로 더 먹으려고 싸우지 않습니까? 아마 전쟁은 한정된 물건을 서로 더 많이 갖기 위해서, 더 많이 먹기 위해서 경쟁을 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파생된 행동이라는 생각을 필자는 합니다.

 

결국은 전쟁이라는 행위는 인간뿐만이 아니라 동물들도 갖고 있는 기본(원초)적 행동속성입니다. 그렇다면 전쟁을 인정하자는 것입니다. 인정하되 현명하게 또 아주 조직적으로 의미 있게 전쟁을 치르는(수행)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손자병법에서는 ‘허실편’에서 전쟁이라고 하는 것 피할 수 없는 거다. 전쟁에 있어서 상대방에 대한 내 우위를 확보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 중요한 것이 뭐라고 하는 것이냐면 바로 ‘허실편’에서 토파하고 있는 상대에 대한 ‘허와 실을 파악’하라는 것입니다.

 

상대의 ‘허와실’을 파악해야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것입니다. 主導權. 주도권이 뭐예요? 영어로 말하면 이니셔티브(initiative)로 ‘주장이 되는 위치에서 이끌거나 지도할 수 있는 권리’를 주도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주도권이라고 하는 것, 익히 알고들 있는 사항입니다. 어떤 일을 하는데 있어서 주도권(이니셔티브)을 누가 잡고 있냐에 따라 어떤 일의 향방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주도권을 누가 잡았냐가 손자병법에서는 굉장히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집안에서도 주도권 쟁탈전을 합니다. 뭐 식당에 가서 밥 먹는 것도 어떻게 보면 주도권 쟁탈전입니다. 누가 음식을 시켜서 누구의 식성대로 먹느냐, 전혀 상관없이 시키기도 합니다만 주로 누가 음식 메뉴를 결정해요? 누가 주도권을 쥡니까? 돈 내는 사람이 대개는 주도권(음식 메뉴 결정)을 쥐지 않습니까?

 

주도권은 보이지 않는 미묘한 것이 내포 돼 있습니다. 그래서 손자는 이렇게 말 합니다. 전쟁을 하려면 주도권을 잡아야 된다. 주도권을 잡기 위해선 상대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무엇을 알아야 하냐면 상대방의 ‘허실’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 합니다.

 

즉 적의 허점을 알아야 한다고 합니다. 적의 실한(강한) 것은 피하고 허점을 찾아내 그 허점(약한)을 쳐야(공격) 내가 주도권을 잡고 끌고 다닌다고 강조합니다. 필자는 이것을 보면서 전쟁에서만 주도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생(삶)에 있어서도 주도권이 있음을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은 자기 인생에 대해서 주도권을 쥐고(잡고) 생활하십니까? 그게 쉽지가 않습니다. 필자는 오늘 손자병법을 각론 함에 있어서 상대방에 대한 허실 파악을 통해 자신이 주도권을 잡고 승리를 이끌어 나가야 한다는 주장과 같은 맥락으로 생각해 봐야 할 것이 바로 인생(삶)에 있어서 자신이 취하는(갖는) 주도권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하는 것과 연결시켜서 각론을 합니다.

 

뭍사람들한테 생활을 하는데 있어 주도권을 잡고(쥐고) 생활하십니까? 라고 물어보면 얼른 답을 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알게 모르게 행위를 주관하는 입장에서 주도권을 행사하고 생활을 합니다.

 

다만 그 주도권이라는 것이 과거(옛날)와는 사뭇 다른 형태의 주권입니다. 어느 주부님이 집에서 친한 동창들과 모임(만남)을 가졌습니다. 그 상황에서 주도권을 잡는 방법이 여러 가지입니다.

 

가전제품 선전(광고)을 보면 어느 집 주부가 다른 집에 놀러(초대)가 물 컵을 들고 주변을 바라보는데 특정회사의 대형 냉장고가 보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당당하게 똑바로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눈을 살며시 돌려서 힐끗 봅니다.

 

이 장면이 필자는 바로 주도권과 관련된 상황이라고 봅니다. 물을 마시는 척(?)하면서 냉장고를 힐끗 쳐다보는 것은 냉장고로 내 기를 죽이려고 하는 것이구나 하는 것을 강조하는 것으로 필자는 그 광고를 만든 것은 바로 주도권 싸움에서 착안한 광고라고 봅니다.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최신형 냉장고를 노출시키므로 그것으로 주부의 마음(자존심)을 자극 기를 죽여서 주도권을 잡겠다는 것을 노출하면서 결국은 최신 냉장고를 부각시키는 전형적인 보이지 않는 일상생활 속의 주도권 쟁탈(?)을 잘 나타는 것이라 필자는 생각합니다.

 

한편으로는 필자는 이런 생각도 합니다. 얼마나 주도권을 잡을 소재(명분)가 없으면 냉장고로 잡을까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냉장고 뿐 만이 아닙니다. 또 무엇으로 주도권을 잡아요? 아파트 평수로도 주도권을 잡지 않습니까?

 

입고 다니는 옷, 하다못해 반지, 돈 등 별거 아니라고 필자는 생각하는데 뭍사람들은 상대에게 자신을 은근히 내세우는 주도권을 잡는 잣대(도구)로 사용하는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맹자에 주도권과 관련하여 이런 말이 있습니다. 상대방하고 만났을 때 증자와 나눈 말을 빗대어 주도권을 말합니다.

 

주도권이라는 것은 조정(국가)에서 주도권은 작위(벼슬) 만 한 것이 없다고 합니다. 작위라는 것이 뭐예요? 벼슬입니다. 국가라고 하는 조직(공적기구) 안에서 주도권은 누가 쥐고 있습니까?

 

주도권을 쥐는 근본은 바로 지위 때문에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국가에서는 지위가 중요한 것입니다. 나이는 상관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향당(동네)에서의 주도권은 ‘연치’ 즉 나이가 많은 사람이 갖습니다. 동네에서 주도권은 나이입니다.

 

나이 다음으로 주도권을 행사(쥐는)할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얼마나 내가 利益을 주느냐, 얼마나 德을 갖고 있느냐, 즉 德과 人格이 있느냐 인 것입니다.

 

필자는 이 해석(주장)을 이렇게 이해를 합니다. 결국 자기가 처한 상황(속한 조직)이 국가의 조정이냐 아니면 동네 아저씨로 돌아왔을 때냐 아니면 이 세상을 위해서 내가 얼마만큼 도움이 되느냐 그런 상황에 따라 주도권을 쥐는 행태가 다 다른 것이란 것입니다.

 

처한 상황마다 주도권을 잡는(행사하는)것이 틀리다는 것입니다. 동네에선 나이입니다. 국가기관에서는 지위입니다. 그리고 세상을 위해서는 도움이 되는가와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인격입니다. 맹자가 말하는 주도권을 행사(쥐는)하는 주체에는 냉장고, 아파트 평수, 돈(부)가 없습니다.

 

옛날 사람들이 표출한 주도권은 결국은 현장(상황)에서 상대방을 제압할 실질적인 물리력 즉 내가 갖는 위력(힘)입니다. 힘이 센 사람이 주도권을 끌고 가게 돼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손자는 말하면서 주도권을 잡기 위한 방법을 제시(주장)합니다.

 

준비한 자만이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고 하는 아주 유명한 명구(名句)를 말 합니다. 허실편의 첫 문장으로 凡先處戰地(범선처전지) 而待敵者佚(이대적자일) 后處戰地(후처전지) 而趨戰者勞(이추전자노)라고 주도권을 말합니다.

 

손자는 주도권을 잡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주도권을 잡는 데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은 적에 대한 허실을 얼마나 정확하게 파악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어떤 부대든 먼저 대기하라고 합니다. 어디에서 대기를 하라는 것입니까? 전쟁을 하기 전에 전쟁을 하고자 하는 곳에 먼저(미리) 도착해서 전쟁 준비를 완벽하게 해 놓고 상대할 적을 기다리라고 합니다.

 

상대를 기다리는 자는 편하게(수월) 이긴다는 논리입니다. 편안하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미 준비를 다 끝내놨기에 상대방 보다 편안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늦게 도착한 상대방은 상대적으로 나보다 늦게 전쟁터에 도착을 했으니 땀을 뻘뻘 흘리면서 고생을 하고, 또 한 전쟁을 하려고 달려가는 자는 고생만 한다는 것입니다.

 

이 논리는 전쟁터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삶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학교를 다니든 직장을 다니든 그 어떤 상황에 대해서 선제(먼저)적으로 준비한 자는 편안한 것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미리 도착해서 준비를 하면 싸우려는 곳의 지형이라든지, 내가 처한 상황, 상대방의 허실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더 생각할(파악) 기회를 가질 수 있잖습니까? 하지만 뒤늦게 도착하면(가면) 상대방은 준비 다 끝내고 기다리고 있는데 헐레벌떡 지금 막 도착해서 싸운다면 상대보다 고생이 되는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병사들은 피곤하고 결국은 전쟁의 주도권을 누가 갖습니까? 준비된 자에게 주도권이 넘어가는 것은 자명한 일 아니겠습니까? 결국 주도권, 이니셔티브를 갖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자유를 갖는 것 아니겠습니까? 행동의 자유를 갖는 것입니다. 전장에서 상대방과 싸우는데 먼저 가서 기다리고 준비한 자가 주도권을 쥔다는 말은 그만큼 내 운신 폭이 넓어진다는 것으로 승리의 우위가 열려져 있는 것입니다.

 

전장과 관련하여 상대방과 비교(생각)해볼 기회도 더 많다는 것입니다. 결국 주도권은 주도권 그 하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많은 부수적인 상황(기회)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준비한 자만이 주도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손자는 계속해서 주도권에 대해서 말합니다. 故善戰者(고선전자) 致人(치인) 而不致於人(이부치어인) 能使敵自至者(능사적자지자) 利之也(이지야)라고 말합니다.

 

진짜 선전하는 사람, 전쟁을 잘하는 사람은 ‘致人(치인)而不致於人(이부치어인)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 ‘치’라는 것이 뭐예요? 누구를 초치하다 초청하다는 뜻입니다. 진짜 전쟁을 잘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자기 마음대로 끌어들이지 다른 사람에게 끌려 다니지 않는다로 해석하면 될 것입니다.

 

이 말은 손자병법에 있어서 명언입니다. 내가 상황을, 상대방을 주체적으로 끌고 다니지 남에게 끌려 다니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게 주도권이고 행동의 자유고 조직의 자유입니다. 그만큼 선택의 폭이 넓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이 쉽지 주도권을 잡는다는 것이 말같이 쉽지가 않습니다. 준비한 자가 주도권을 잡는다고는 하지만 준비를 함에 있어 상대와 똑같이 하면 그것은 아무 쓸모가 없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해요? 주도권을 잡기 위한 것에 대해서 손자는 손자병법 곳곳에 아주 세밀한 부분까지 말을 해 놓았습니다. 주도권과 관련하여 손자와 같은 주장의 례를 살펴보면 36계라고 하는 유명한 전술 책에 ‘반객위주(反客爲主)’라는 계책이 있습니다.

 

‘반객위주’의 본뜻은 주인이 손님 대접을 잘못하여 오히려 손님의 대접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쉽게 말하면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밀쳐내고 주춧돌이 된다고 이해를 하면 됩니다. 주도권은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지금 주도권을 잡았다고 해서 그 주도권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습니다. 저 사람이 객(손님)이고 내가 주인인데 언젠가 그 객이 뭐가 될 수 있어요? 주인 노릇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반대로 주인은 객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객전도(主客顚倒)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주도권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항상 상황을 얼마나 준비하고 상황을 리드해 나가냐에 따라서 주도권이 나에게 올 수도 있고 상대방에게 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 ‘반객위주’ 전법이라는 것은 삼국지에 나오는 전법으로 중국 황하강 북쪽에 ‘원소’라고 하는 군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원소 밑에 기주라는 땅이 있었는데 기주는 ‘한복’이라는 사람이 주인으로 있었습니다. 원소와 한복은 ‘동문수학’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한복과 원소는 병법을 동문수학을 했는데 원소가 스스로 황제라고 하면서 맹주 행세를 하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원소가 식량이 부족하여 한복한테 계속 식량을 빌렸습니다. 그런데 식량을 빌리다 보니 이것이 한두 번 갖고는 자기 군사(병력)을 충분히 먹일 수가 없었습니다. 한복이 주인으로 있는 기주는 곡창지대였습니다.

 

그래서 원소는 이 기주를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에 빠져있었습니다. 한복이 친구로서 나를 도와주려고 계속 식량을 보내주고 하는데 땅을 뺏는다는 것도 그렇고 해서 고민하고 있는데, 방법은 뭐 밖에 없냐면 기주를 빼앗는 수밖에 없다고 결론합니다.

 

그런데 친구가 여태 도와 줬는데 땅을 뺏으면 여태 도와준 공도 모르고 참 그렇잖습니까? 고민을 하고 있다가 결국은 ‘반객위주’ 전번을 써서 기주를 취합니다.

 

원소가 쓴 ‘반개위주’ 전법은 자기와 라이벌 관계에 있던 ‘공손찬(백규)’에게 곡창지대인 기주를 공략하자고 제안을 합니다. 그렇잖아도 공손찬은 기주를 취하고 싶어 했는데 라이벌인 원소가 도와준다고 하니 제안을 받아드립니다.

 

그리고는 서로 다투지 않기로 약속을 합니다. 그 상황에서 원소는 친구인 한복에게 가서 공손찬이 지금 기주로 쳐들어온다더라 하고 귀뜸을 합니다. 실제는 자기가 기주를 취하고 싶은 속내는 감추고 공손찬과 세운 계책을 발설 합니다.

 

실은 자기(원소)가 쳐들어갈 것이면서 한복에게 빨리 대비를 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한복 입장에서는 대비를 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때 원소가 슬쩍 친구야! 그러면 내가 ‘기주’로 와서 도와줄까? 라고 합니다.

 

그 말은 들은 한복은 그렇게 해 주면 너무도 고맙겠다고 합니다. 그러자 원소는 이때다 하고 군대를 이끌고 기주로 옵니다. 기주에 와서는 처음에는 도와주러 왔다고 하면서 슬금슬금 궁댕이를 들이미는 거였습니다.

 

왜? 그 있잖습니까? 주도권이라는 것, 처음에는 도와주는 척하다가는 야! 이제부터 군대 작전권은 내가 직접 행사할게, 그러면서 슬금슬금 경제권도 관여하고, 인사권까지 행사하면서 슬금슬금 한복의 권력을 다 차지합니다.

 

그러다 보니 결국 ‘기주’가 누구에게로 넘어가요? 원소에게 넘어 갔습니다. 원소는 손님으로 왔다가 주인이 된 것입니다. 이런 경우 많잖습니까? 회사에서도 그렇고 나라에서도 그렇고 슬금슬금 들어와 자리를 차지하면 주도권이 어느새 넘어가 버리는 것입니다.

 

정치권, 경제권, 군사권 다 뺏기는 경우가 있단 말입니다. 결국 주도권이라고 하는 것은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이니셔티브를 잡아라. 이게 손자의 명제인데 이 주도권은 끊임없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해하고 그 상황 속에서 나의 액션을 취할 때 손님이 도리어 뭐가 될 수 있어요? 주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도권을 쥐게 되는 것입니다. 필자의 각론을 듣고 있는 여러분이 언젠가는 강의를 하시는 것입니다.

 

‘반객위주’는 결국 주도권은 만들어 나가는 것이고, 주도권은 변화에 적응할 때 유지가 되는 것입니다. 손자가 살던 시대는 정말 변화무쌍한 시대였습니다. 우리는 그 시대를 춘추전국시대라고 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춘추시대에서 전국시대로 넘어가는 시기였습니다.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라고 하는 사회적 분위기(변화)는 청동기 문화(분위기)에서 철기로 넘어 가는 시기였습니다. 철기도 만들어졌지만 대부분 청동기로 전국시대로 넘어가면서 철기가 보편화됩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냐면 요즘으로 치면 인터넷 정보통신 혁명과 같은 의미를 갖습니다. 청동기로 싸움하다가 철기로 싸움한다는 것이 뭐예요? 어마어마한 폭발적인 전투력을 갖는 것입니다.

 

당시에는 보편적으로 전차전이었는데 전국시대로 넘어 가면서 보병전으로 바뀝니다. 그러니까  사회가 엄청나게 바뀌는 것입니다. 춘추시대에는 거의 전술이라는 개념이 없었는데 전국시대로 넘어 가면서 보병 개념이 도입되면서 전술 개념이 도입됩니다.

 

보병이 뭐예요? 아무 데나 갈 수 있는 군대아닙니까? 산에도 갈 수 있고, 물에도 갈 수 있잖습니까? 그러니까 전술 개념이 생긴 것입니다. 그만큼 전국시대는 춘추시대보다 전쟁뿐만이 아니라 사회전반에 걸쳐 뭔가 변화되는 변혁의 시대였던 것입니다.

 

변혁의 시대에는 적응한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그 변혁에 적응하는 사람은 주도권, 이니셔티브를 쥐는 것입니다. 변혁의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시대를 재빨리 인식하고 그 변화에 적응한 나라가 바로 ‘진나라’였습니다.

 

진나라가 상황을 제일 빨리 이해(인식)했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 변화에 적응시킨 것입니다. 그래서 중국은 진나라에게로 넘어가게(통일)된 것입니다. 손자는 결국 시대를 살면서 주도권, 이니셔티브를 쥐기 위해서는 변화하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손자가 주장하는 이론을 보면 지중해 지역에 있는 ‘그리스’라는 나라가 떠오릅니다. 그리스는 이탈리아 옆에 장화처럼 생긴 나라입니다. 그리스 군대는 로마 군대보다 훨씬 강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 군대는 로마 군대에게 완전히 패망합니다.

 

초기에는 그리스 군대가 강했는데 그 이유는 ‘홉라이트(Hoplite)’라고 하는 병사 무장에서 볼 수 있습니다. 홉라이트는 완전히 중무장한 갑옷을 입은 그리스 병사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스 군인(홉라이트)은 머리에 투구를 쓰고 갑옷을 입고 2m가 넘는 긴 창으로 무장을 하는데 무장을 한 병사들은 평균 34kg의 무장을 합니다. 이 정도의 무장이라면 움직임이 느릴 수밖에 없습니다. 거의 움직이지 못할 정도인 것입니다.

 

그런 병사들이 전쟁을 하는 방식(법)은 주로 지중해 연안의 국가는 농업 국가였습니다. 농업 국가이므로 농사철이 끝나고 수학을 끝낸 다음에 어느 날 언제 어디서 우리 만나서 한번 붙어볼까라고 약속을 하고 완전히 중무장한 홉라이트 갑병들이 방진 형태를 취해서 전장에 임합니다.

 

일종의 편전을 하는 것입니다. 상대방 군대가 일렬로 정열하고 나도 일렬로 정열 해 돌격 앞으로 해 이쪽(내) 밀집대형과 상대 밀집대형이 부딪혀 싸웁니다. 아무런 전략 전술 없이 그냥 돌격 앞으로 해 1대 1로 상대를 찌르고 살아남으면 또 다른 상대를 찌르고 해서 최종적으로 살아남은 병사가 많은 부대가 승리하는 것입니다.

 

그런 전투(싸움)에서 필요한 것은 오직 용기인 것입니다. 용기가 중요합니다. 오직 용기 하나만 갖고 버티는(싸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개인의 용기 그 용기가 상대방과 붙어서 힘을 발휘할 때가 있지만 전쟁은 용기만 갖고 하는 것이 아니고 시대가 변해서 그런 형태의 전쟁은 승리를 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용기보다도 더 많은 전략과 전술이 필요한 것이 전쟁(싸움)입니다. 용기만 갖고 전쟁을 하던 시대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리스가 로마한테 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결국은 변화하는 시대를 못 읽은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영원한 강자는 없습니다. 물론 변화에 성공한 로마가 그리스 군대를 이기고 그야말로 지중해 전역의 패권을 장악했지만 로마도 천 년을 못 갔습니다. 로마도 역시 시간이 지나면서 주도권을 잃었습니다.

 

물론 그 주도권이 유럽으로 해서 아메리카로 해서 앞으로는 아시아 쪽으로 온다고 문명 이동 설(론)도 있지만 주도권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은 영원한 것이 아니고 상황에 맞게끔 그 상황에 얼마나 적응하느냐가 바로 주도권입니다.

 

여러분들! 주도권과 관련하여 중요한 것은 주도권을 과연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이 관건이 매우 중요합니다. 손자가 뭐라고 했습니까? 주도권을 잡아라. 잡았는데 잡았으면 어떻게 해요? 유지해야 합니다.

 

주도권! 왜요? 영원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주도권을 유지하는 방법에 대해서 손자는 아주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고 있습니다. 손자가 주도권을 유지하는 방법으로 주장하는 것은 ‘致人(치인) 而不致於人(이부치어인)’ 하라고 합니다.

 

내가 상대방을 끌고 다녀야지 상대방에게 끌려 다니지 말라고 강조합니다. 그러면서 주도권을 내가 가졌는데 그것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그 유지하는 아이디어를 내고 있는데,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내가 원하는 장소에 이르게 하라고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상대에게 이익을 주라고 합니다. 이익을 주란 것이 뭐예요? 상대방으로 하여금 내가 원하는 장소에 이르지 못하게 하려면 ‘해’를 주란 말입니다. 결국 주도권을 끌고 나가는 위해서는 ‘利’와 ‘害’를 주라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내가 원하는 장소로 오게 하려면 즉 주도권을 쥐려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상대방이 좋아하는(이익) 미끼를 놓으면 됩니다. 이익을 주면 됩니다. 상대방에게 아! 내가 저기로 가는 것이 이익이라고 생각하게 만들면 얼마든지 원하는 장소로 끌고 올수 있는 것입니다.

 

또 반대로 오지 않도록 하려면 그곳으로 오면 해가 된다고 생각하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곳에 오는 것이 손해라는 생각만 주면 됩니다. 기발한 생각 아닙니까? 힘으로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너 이리로 와, 안와라고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인간은 스스로 어떤 일(행위)을 하는데 있어서 이것이 나한테 이익이냐 손해냐를 따지는 동물이란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다못해 하나의 어떤 행동(해위)을 하든, 어떤 직업을 선택하든 모든 인간이 갖고 있는 행동의 내면에는 반드시 이해관계에 따라 행위가 결정(실행)됩니다. 필자의 이 말에 동의 안 하시는 분 있으세요? 곰곰이 생각해 보세요.

 

본인도 모르게 행동의 이면 속에는 결국은 그 행위를 하면 나에게 이익이 될 것인가 해가 될 것 인가가 다 내제돼 있는 것입니다. 손자는 그것을 이용하라고 합니다. 주도권을 잡으려면, 상대방을 내 마음대로 끌고 다니려면 이익과 해(손해)를 상대에게 주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손자가 말하는 주도권을 잡는 방법론입니다. 국가에서 외교를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하고 외교를 할 때 명분보다는 결국은 저 나라가 왜 우리나라와 같이 경제 협력을 하려고 하는지, 저 사람이 여기 왜 왔는지, 비행기 팔아먹으러 왔는지, 아니면 무슨 특별한 이해관계가 있을 것이란 것을 잘 파악해야 하는 것입니다.

 

정확하게 상대의 허와 실을 파악 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의도를 알아차려서, 이런 이해관계에 얽혀서 행동을 한다는 것을 인정(인지)하고 저 사람이 나에게 오게 하려면 그에 따른 이익을 주란 말입니다.

 

오지 못하게 하려면 해를 주란 말입니다. 그랬을 때 마음대로 누가 끌고 가는 것입니까? 바로 내가 끌고 가는 것입니다. 손자가 말한 ‘致人(치인) 而不致於人(이부치어인)’이라 함은 사람을 끌고 다녀야지 사람에게 끌려 다니지 말라고 하는 말로 한 개인에게 한 말이기도 하지만 국가,  회사, 군대 등 모든 조직에 해당하는 말이라고 필자는 생각 합니다.

 

안 그렇습니까? 국가도 남의 나라에 끌려 다녀서는 안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내가 끌고 다녀야죠. 물론 회사 조직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국은 끌고 다니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이해관계를 잘 따져봐야 됩니다.

 

손자병법에서 ‘形勢론’ ‘虛實론’ ‘利害론’ 이 모든 것이 아주 중요한 개념들입니다. 상대방에게 내가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론으로 ‘利害論’을 주장(말)합니다. 이와 해에 관련된 말들을 많이 합니다. 혹시 ‘칠종칠금’이라는 말 들어보셨습니까?

 

‘일곱번 잡았다가 일곱번 놓아줬다’. ‘칠종칠금’ 유비의 참모인 ‘제갈량’이 유비의 유언인 천하통일을 실행하고자 사천성을 중심으로 힘을 모으고 있을 때 ‘운남성’이라는 지역을 먼저 정벌을 해야 조조가 있는 산동으로 쳐들어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운남성을 정벌해야 하는데 그곳에 ‘맹획’이라는 족장(두목)이 있었습니다. 이 맹획에 대한 주도권을 잡아야 조조를 편안하게 칠 수가 있는데 맹획이 버티고 있어서 주도권을 행사할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단순히 맹획을 잡는다고 해서 주도권을 쥘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맹획 스스로 내가 잘못했습니다. 당신을 따르겠습니다. 하고 무릎을 꿇기 전까지는 안심이 안 되는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맹획과 제갈공명이 전쟁을 합니다. 그때 맹획을 일곱 번 잡았다가 일곱 번 놓아 줍니다. 첫 번째 잡아서 너 항복 할래 라고 하자 내가 오늘 재수가 없어졌으니까 다시 한 번 기회를 달라고, 그래 그러면 놔줄게. 그런데 또 잡힙니다.

 

이번에도 맹획이 분을 못 참는 것입니다. 그래서 또 놓아 줍니다. 이렇게 일곱 번 잡았다 놔주고 나니 막판에는 맹획이 아무리 생각해도 당신한테 못 당할 것 같다. 내 무릎을 꿇겠다. 이제부터 당신 후방 안 괴롭히고 우리 운남성 모든 ‘태족’들은 당신(촉나라)을 위해서 충성하겠다고 항복을 한 것에서 유래 한 말입니다.

 

결국은 뭐예요. 주도권은 겉으로만 잡으면 안 됩니다. 마음을 잡아야 진정한 주도권을 잡은 것입니다. 힘으로 꽉 눌러서 너 이리와 하는 것이 주도권이 아니란 말입니다.

 

마음속에서 내가 저 사람한테 도저히 안 되겠다고 무릎을 꿇게 만들 때 그것이 진정한 주도권입니다. 주도권이라는 것이 외형적으로 쥔 주도권은 진정한 주도권이 아닙니다. 실제로 마음까지 장악한 주도권이 진정한 주도권이라고 필자는 생각합니다.

 

주도권에 대한 ‘利害論’,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 이와 해를 적절히 사용하라는 것에 대해 손자(병법)가 주장하는 내용들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雜於利害(잡어리해), 雜於利(잡어리) 雜於害(잡어해)’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이로움과 해로움을 어떻게 상대에게 줄 것인가? 행사 할 것인가? 라는 것입니다. 요즘 말하는 채찍과 당근을 동시에 사용하란 말입니다.

 

이게 주도권 잡는 핵심 방법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은 계속 상만 줘서 안 될 사람이 있습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해요? 따끔하게 채찍을 가해야 합니다. 또 매일 벌만 줘서 안 될 사람이 있단 말입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해요? 당근도 주고 채찍도 가해야 하는 것입니다. 조직을 끌고 나가는 리더는요 이와 해를 적절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雜於利(잡어리) 雜於害(잡어해)’ 할 때 어떤 일이든 가히 자기 조직원들이 믿게(따라올 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상대방에게 그렇게 확신을 줬을 때 상대를 제압할 수(주도권)있는 것입니다. 그 결과가 곧 승리입니다. 상대방에게 믿음을 주고 내 근심을 제거하기 위해 이와 해를 어떻게 해요? 적절하게 사용해 주도권, 이니셔티브를 내가 쥐고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주도권을 다들 쥐고 살고들 계시죠? 삶에 있어서 주도권을 잡고 산다는 것이 외형적으로 보이는 주도권이 아니라 상대의 마음까지 끌고 나가는 주도권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필자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방에 대한 정확한 인식, 즉 허와 실이 무엇인지를 파악한 후 ‘이’와 ‘해’ 중 어느 것이 더 효과적으로 상대를 끌고 나닐 수 있는지를 분석해서 적절하게 利와 害를 구사해 내가 원하는 대로 끌고 다니는 것이 조직(군대)의 힘이고 그것이 승리의 가장 기본적인 요건인 것입니다.

 

여러분들! 주도권이라는 것 절대 잊지 마시고 내가 주도적으로 상대를 끌고 다닐 수 있는 주도적 상황에서 생활하시기를 바라면서 ‘主導權’에 대한 각론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 28강에서는 “황홀의 미학”에 대해서 각론 합니다.

 

태권도정보연구소 / 청호태권도장 / 신성환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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