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形篇(군형편) 23강 “자본을 확보하라”
여러분과 같이 손자병법을 토파(공부)하고 있는 “신성환 관장”입니다. 22부 “영원한 승리를 얻는 지혜”에 이어 23부 “자본을 확보하라”에 대해 각론 합니다.
안녕하십니까? 도대체 어떻게 해야 승리를 하는 겁니까? 손자병법에서 계속 승리하라고 합니다. 승리해라. 승리하는 방법들이 많이 있잖습니까?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승리를 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준비) 하겠습니까?
승리를 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승리를 할 수 있는 것일까요? 궁금하지 않으세요? 도대체 뭘 어떻게 준비해야 승리할까요?
매우 궁금할 것입니다. 과연 승리의 원천은 무엇일까? 승리의 핵심은 도대체 뭐예요? 뭐가 승리를 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입니까? 공부를 해야 돼요. 노력! 노력해야 됩니까? 음 ~ 일단 승리를 한다는 것은 두 가지 요소가 충족해야 승리를 할 수 있다고 필자는 생각 합니다.
그것은 정신적인 요소와 물질적인 요소입니다. 승리를 하기 위해서는 정신적인 조건(요소)이 있고 물질적인 조건(요소)이 있습니다.
정신적인 조건은 뭐예요? 내가 이기겠다. 구성(병사)원들이 모여서 파이팅 하면서 나가는 정신적인 힘 그거 무시 못 합니다. 승리하는데 있어 ‘악(정신력)’으로 덤비는데 어떻게 이겨요?
정신력으로 덤비는데, 손자도 이것을 강조합니다. 승리를 하려면 지도자가 리더십이 있어서 전체 군대(병사)을 하나로 묶어내고 그들과 함께 반드시 이겨야겠다는 그 어떤 확실한 정신력 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강조를 합니다.
그러면서 정신력과 같이 물질적인 조건을 말합니다. 물질적 조건은 뭐예요? 병사들이 정신력만 갖고 싸웁니까? 아닙니다. 뭐가 있어야 돼요? 밥도 먹어야하고, 무기도 있어야하고 등등 정신적인 면과 물질적인 요소가 갖춰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결국 승리의 원천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는데 하나는 정신적인 조건이고 또 하나는 물질적인 조건이 있는데 손자는 어디에 더 관심을 두냐면 물질적인 면(요소)에 더 관심을 둡니다.
정신적인 면(요소) 중요합니다. 그런데 배가 고프면 아무리 정신적으로 무장이 되어 있어도 싸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무기도 없이 맨손으로 어떻게 싸울 수가 있습니까? 그래서 승리의 원천은 결국은 물질적 조건이라고 손자는 ‘단원적’으로 강조를 합니다.
당시(춘추전국시대) 손자는 물질적인 면을 더 강조했지만 손자 이외에 다른 사람들은 물질적인 면보다 정신적인 면을 더 강조했습니다. 손자는 정신적인 면만 갖고는 이길 수(승리)있는 것이 아니란 것입니다.
그렇다고 물질적인 것만을 갖고 이기는 것 또한 아니라고 말하면서 결국은 정신적면과 물질적인 두 가지가 뒷받침이 될 때 승리를 할 수 있다고 합니다.
두 가지 요소가 잘 갖추어져(어우러져)야 즉 정신무장도 되어 있고 그 무장된 정신력에 물질적인 지원이 충분할 때 그 군대의 힘은 강력해져 승리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나의 형(모양)을 높이느냐는 것이 손자병법 13편중 4번째 편인 형편(형세론)인 것입니다.
형을 높이기 위해서는 정신적인 조건도 필요하지만 손자가 더 강조하고 있는 것은 물질적 조건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한국 사람들은 사실 물질적인 것보다는 정신적인 것에 더 관심이 많다고 필자는 생각합니다. 여러분들 필자의 이런 생각에 동의하십니까?
사람들은 속으로는 그렇지(물질적)만 겉으로는 사람이 명분 즉 정신 이런 것을 중시한다고 말들을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주장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굉장히 물질적인 것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말을 안 할뿐입니다. 결혼할 때 뭐 상대의 뭐 보고 결혼하셨습니까? 아! 사람을 보고(우선) 했지요. 그런데 실제로는 이것저것 다 따져본 것입니다. 이 사람이 날 먹여 살릴 수 있을지 뭐 이런 것 다 따져본 것입니다.
그렇지만 절대 그런 말은 안 하죠. 겉으로 표현을 안 할 뿐입니다. 속으론 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손자는 선언적으로 말(주장)합니다. 승리는 물질적인 조건이 원천이라고 말을 합니다. 오늘 각론 하는 내용(주제)입니다.
손자가 주장하는 승리의 원천은 즉 승리의 가장 핵심 속에는 물질적인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고 본 것입니다. 손자가 본 그 물질적인 조건은, 현대사회에서 기업이 성공하고 사업을 더 확장하려면 결국 회사원들의 화이팅도 좋지만 뭐가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까?
손자 입장에서는 자본이 충분해 기업에서 월급도 많이 주고하면 결국은 좋은 사람(인재)이 오게 돼있고, 돈 많이 주면 더 열심히 일하려고 하는 욕구도 생기고, 그런 것이 물질적 토대로 인해 형성된다는 것입니다.
손자가 강조하는 것을 들어보면 어떻게 승리를 이끌 것인가는 먼저 내 형(모습)을 높여야 된다고 합니다. 형이 높이면 뭐가 세집니까? 물질적 조건이 탄탄해져야 내 힘이 강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힘이 강해지기 위해서는 다섯 가지 요건이 갖춰져야 한다고 주장을 합니다. 첫 번째로 물질적인 조건(요소)을 말하면서 국토의 크기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전쟁을 하려면 일단 전쟁하려는 나라의 국토가 어느 정도인가를 따져봐야 된다고 합니다.
승리하는 방법 중에 첫 번째 조건이 국토의 크기라고 하고 두 번째는 ‘양(量)’이라고 합니다. 국토의 크기가 크면 생산량도 많다는 것입니다. 생산량이라는 것이 뭐예요? 생산량이라는 것은 식량이라든지 철광석등 농산물과 천연자원 등 국가에서 나오는 각종 자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식량이 풍부해야 군사를 배불리 먹일 수 있고 철광석등이 풍부해야 칼등 각종 무기를 만들 것 아니겠습니까? 국토의 크기가 커야 그 땅에서 생산하는 각종 자원의 생산량도 많아지는 것입니다.
지금 필자가 각론하고 있는 것은 형과 세를 높이고 승리하는 조건의 다섯 가지 요건(요소) 중에 첫 번째는 국토의 크기고 두 번째는 국토에서 생산하는 생산량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수라고 합니다. 즉 숫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무슨 숫자입니까? 군대 병사들의 숫자입니다. 소집 가능한 군대의 숫자가 어느 정도 되느냐는 것입니다. 이 세 번째 요소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다음에 네 번째 ‘칭’이라고 합니다. 秤은 저울 칭 입니다. 저울질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상대방하고 나하고 어떻게 해요? 상대방과 나의 전력을 저울질 해 봐서 내가 상대방보다 전력이 우위에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상대방과 나하고 비교를 한다는 것, 저울이라는 것이 뭐예요. 저울 있잖습니까? 저울질 한다는 것은 상대방과 나를 수평선상에 올려놓고 무게를 달아보는 것으로 내가 우위에 선다는 것은 상대방 보다 무겁다는 것으로 저울(질)에서 상대방보다 내가 어떻게 해야 돼요.
무거워야 내가 이길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다섯 번째는 ‘勝’이라고 합니다. 그래야 승리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손자는 다섯 가지를 말하는데 결국 승리하는 다섯 가지 조건으로 손자가 주장하는 것 중에 정신적인 것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손자가 주장하는 승리를 하는 다섯 가지 요건(소)에는 정신적인 요소는 없습니다. 파이팅해라, 상하 간의 합의 된 사항, 정신력, 이런 것이 하나도 언급되지 않고 있습니다. 주장하는 모든 것은 다 뭐예요? 전부 다 물질적인 것만을 말하고 있습니다.
물질적인 것을 말하면서 물질적인 것이 충족되려면 나라의 땅(국토)의 크기가 일단 커야 한다고 합니다. 땅이 커야 뭐가 생겨요? 국토가 크면 일단은 식량 등 생산량이 많아집니다. 생산량이 많으면 먹일 사람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즉 생산량이 있어야(많아야) 군대에서 군사들을 많이 뽑고 그들을 먹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저절로 군대 숫자가 늘어나고 그러면 내가 상대방보다 우위에 서는 것입니다. 우위에 서면 상대를 공격할 수도 있고 상대의 공격에 끄덕도 하지 않을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손자는 주장을 합니다. 강해지고 승리하려면 뭘 키워야 합니까? 땅부터 사고 이것을 기반으로 결국 물질적인 조건 손자가 바라봤을 때는 정신적인 조건도 필요하지만 이러한 물질적인 조건을 얼마만큼 크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땅이 커야 생산량이 커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국토가 커야 생산량이 얼마만큼 생산할 수 있는 것인지를 가늠할 수 있고 그래야 군대의 숫자를 키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전력이 우위 인지 아닌지는 승리를 가늠해 보는 척도에서 그 다음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손자가 바라보는 승리의 가장 큰 원천은 물질적인 조건입니다. 요즘 말로 하면 자본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자본이 있어야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손자는 이 주장을 하면서 다섯 가지가 조건에 대해서 말합니다.
국토 크기, 생산량, 군대 숫자, 전력의 우위, 승리는 각각 개별적으로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연관성으로 이어진다고 말을 합니다. 각각의 요소(건)들은 밀접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인과관계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일단은 地(국토)가 있어야 그 地(땅)이 도(國)를 낳고 도는 양(養)을 낳는다고 합니다. 하나의 연관관계로 따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데 결국은 이 도와 지의 차이점은 똑같이 국토지만 땅(地)은 그냥 일반적인 땅이고 도(國)는 개간(開墾)된 땅 즉 나라(국가)을 말하는 것입니다.
한 국가(나라)에 있어 그 나라의 군대가 승리하는 군대가 되려면 일단 큰 땅이 있어야겠죠. 그 땅이 있어야 뭐가 만들어집니까? 개간할 수 있는 땅이 커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개간할 수 있는 땅이 커지면 그 땅에서 뭐가 나옵니까? 생산량이 많아지지 않겠습니까?
생산량이 많아지면 군대의 숫자도 늘어나는 것입니다. 군대의 숫자가 늘어나면 상대방보다 전력이 강해지지 않겠습니까? 전력이 강해지면 뭘 얻을 수 있습니까? 손자는 전쟁의 승리는 정신적인 조건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러한 국토의 크기에 따른 개간된 땅에서 생산량 즉 물질적인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를 합니다.
국토가 크고 큰 국토에서는 국력을 키울 각종 물자 즉 생산량이 많아지고 그 생산량이 많으므로 병사의 숫자가 많아지고 병사들이 많아지므로 전력의 우위에 서게 되고 그것이 승리로 다가온다고 하는 굉장히 현실적인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굉장히 현실적인 손자(병법)는 당시의 노자(논어)와는 생각이 틀립니다. 노자(논어)는 이런 말(주장)을 안합니다. 논어(노자)에서는 기본적으로 손자가 주장하는 물질적(생산량) 조건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도자의 도(정신)가 중요하다고 합니다.
노자의 생각은 물질보다는 정신이 더 중요합니다. ‘德’이 중요한 것입니다. 즉 사람이 도가 있고 덕이 있으면 물질이 저절로 따라온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그렇게들 생각하십니까? 음~ 글쎄요! 그렇게들 생각 할 수 있습니다. 道와 德이 있으면 물질이 따라오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손자는 그렇게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아니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이 우선적이냐 하는데 있어서 정신보다 물질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도’와 ‘덕’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물질이라는 것입니다. 눈으로 딱 보이는 생산량 즉 물질적 조건이라는 것이 더 필요(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필자도 손자와 같은 생각을 합니다. 정신적인 즉 도덕적인 지도자의 리더십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지도자의 도와 덕이 중요하지만 결국은 리더십(힘)을 발휘하려면 물질적인 토대가 튼튼해야 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기억하실 것입니다. 예의, 염치 등 사람이 사람다운 행위(행동)를 하기 위해서는 ‘창름실이지예절(倉廩實而知禮節)’이란 말을 ‘시계편’에서 한 적이 있습니다. 창고가 실해야(채워져) 예의고 염치고 찾을 수 있다고. 당장 내가 배고프고 부모 처자식 굶기고 있는데 무슨 예의고 염치를 찾을 수 있습니까? 목구멍이 포도청인데!
손자는 승리의 밑바탕에는 물질적 조건(자본)이 충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물질적 토대가 있어야 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결국 현대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회사(기업)가 크고 발전하려면 자본(물질)이 넉넉해야 하지 않습니까?
회사(조직), 나라(국가)의 힘이 강해지려면 물질적인 토대가 있어야 튼튼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승리는 아니지만요. 물질적인 것만 갖고 승리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 자체만 갖고는 승리 할 수 없습니다.
이것(물질적 조건)을 어떻게 해야 돼요? 구슬이 서말이라도 어떻게 해야 해요? 필자가 이런 질문을 하겠습니다. 물질적인 즉 돈이나 자본이 많으면 다 이길 수 있습니까? 그런 것은 아니란 것입니다.
그 자본(물질)을 어떻게 해야 해요? 승리와 어떻게 연결을 시키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단 말입니다. ‘여불위(呂不韋)’라고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여불위! 전국 시대 말기 진나라의 관료로 아주 유능한 상인입니다.
여불위는 물질적 조건을 자기의 승리와 연관시켜 대성한 아주 대표적인 사람이라고 필자는 생각합니다. 여불위라고 하는 사람은 일개 상인입니다. 상인이라고 하면 장사하는 사람이죠. 굉장히 장사에 능했다고 전해지는 인물입니다. 유능한 상인이니 당연히 돈은 많이 갖고 있었습니다.
여러분들? 내가 돈(富)을 많이 벌면, 돈을 벌기 위해 열심히 노력을 하죠. 그런데 돈이 있으면 뭐가 하고 싶어집니까? 권력(명예)을 갖고 싶어 합니다. 그러니까 갖고 있는 돈으로 사회적 명예를 추구하는 것이 사람의 본성 아닙니까?
미국의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의 5대 욕구 이론이 있잖습니까? 사람은 1단계로 ‘생리적 욕구’ 즉 기본적인 의식주에 대한 욕구가 있고 그 욕구 다음 2단계는 안전에 대한 욕구가 생기며 2단계 욕구가 채워지면 3단계로 다른 사람과의 관계형성(사회적 활동)욕구를 갖고 그 다음 4단계는 명예에 대한 욕구 즉 사회에서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생기고 그 다음 단계로 ‘자아실현(자기만족)’에 대한 욕구를 갖는(추구)것입니다.
돈만 갖고 있는 것으로 채워지지 않는 인간의 욕구가 있기 때문에, 그래서 여불위도 항상 고민을 했죠. 위대한 상인으로 돈(물질)에 대한 욕구는 충족을 했는데, 물질적 조건은 충분했지만 그걸 어떻게 내 인생의 명예와 권력으로 연결시킬 것이냐는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권력과 명예를 얻는 고민을 하다고 어떤 해답을 얻었냐면 당시 ‘조나라’ ‘진나라’가 서로 대립하고 있었는데 두 나라 간에 서로 충돌(전쟁)을 막고자 서로 싸우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왕자들을 서로 교환합니다.
그러니까 조 나라의 왕자가 진나라 가서 인질로 있고 진나라의 왕자가 조 나라에 와서 인질로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상대방 왕자들이 인질로 있으니까 전쟁(충돌)이 아무래도 억제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옛날부터 왕족 간에 인질이 교환이 있었는데 진나라에서 조나라로 간 인질은 ‘자초’라고 하는 진나라 왕자로 왕자이간 한데 왕위 계승 순서(서열)가 한참 낮은 사람이었습니다. 진나라의 왕이 죽고 나면 그다음 왕 그다음 왕 등 해서 ‘자초’에게 왕위가 계승될 확률이 굉장히 낮은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상품 가치가 별로 없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권력계승 서열이 아주 낮은 ‘자초’는 나라 간 인질교환으로 인해 조나라에 와서 외롭게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 여불위가 자신의 부를 어떻게 권력과 명예로 연결시킬 수 있을까 고심하던 차에 자초를 발견합니다.
여불위가 보기에 이거(자초) 물건이 되겠단 말입니다. 지금은 별거 아닌 그야말로 인질의 형태로 와 있지만 저 사람한테 잘 투자를 해서 저 사람을 진나라 왕으로 계승시켜 놓으면 그 스폰서 즉 요즘 말로 하면 킹 메이커로 왕을 만든 공 때문에 자기(여불위)가 진 나라에 어마어마한 명예와 권력을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자초한테 돈을 투자를 합니다.
자초는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나한테 이렇게 돈을 투자할 이유가 없는데, 내가 왕위를 계승할 수 있는 서열이 높은 것도 아닌데 하며 의아해 합니다. 자초는 몰랐던 것입니다. 여불위는 상인 특유의 감으로 자신이 갖고 있는 물질적 조건을 승리와 어떻게 연결시킬까 하는 계산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계산(감각)이 선천적으로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똑같이 돈 갖고 있더라도 그 돈을 어떻게 굴려서(투자해서) 더 큰 부를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계산이 나오는 사람이 사업가인 것입니다. 그런 판단(감)이 없는 사람은 사업하면 안 됩니다.
필자가 그런 케이스입니다 ㅎ ㅎ. 엄청나게 앞을 내다보는 선경지명 즉 어떤 일이 어떻게 발전(진행) 될 것이란 것은 예측하고 그에 대한 분석을 하는데도 그 예측하고 분석된 것을 돈(부)과 연결시키는 능력은 젬餠입니다 ㅎ ㅎ.
여불위는 장사(사업가)의 눈으로 ‘자초’를 바라본 것입니다. 결국은 자초를 진나라 왕으로 만듭니다. 당연히 여불위는 진나라의 중보가 됩니다.
중보라 함은 왕의 그다음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여불위가 상인으로서 막대한 부(돈)를 갖고 장사만을 했으면 뭐예요? 장사꾼입니다. 그런데 그 돈 갖고 뭐를 한 것입니까? 정확하게 어디다 투자해야 할지를 알고 투자를 했던 것입니다.
자초한테 투자를 해서 진나라 왕으로 만들었으니 당연히 엄청난 권력과 명예를 얻은 것입니다. 자초로부터(진나라) 엄청난 낙양의 1만 호(號)를 제수(除授) 받습니다. 장사로 따지면 만 배 남은 장사를 한 것입니다.
위대한 승리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불위가 자초에게 투자해서 어마어마한 권력을 얻었는데 여불위는 돈 만 투자를 한 것이 아니라 자초에게 자기의 아들을 임신한 여인까지 바쳐서 자신의 아들을 다음 왕으로 만듭니다. 자초의 아들은 원래 여불위의 아들인데 자초의 아들처럼 성장합니다.
그러니까 자기(여불위) 아들을 임신한 여인을 자초와 결혼(상납)을 시킵니다. 결국은 자초는 자기 아들인 줄 알지만 실제로 그 아들은 여불위의 아들인 것입니다. 자초가 난 아들의 생부는 여불위 인 것입니다.
자초의 아들 이름이 ‘정’입니다. 자초가 낳은 아들인 ‘정’ 그 사람이 누구냐 하면 진시황제입니다. 이 이야기는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이야기로 진위 여부는 필자가 따질(확인)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여하튼 여불위는 상인에 불과하지만 돈을 투자해서 거대한 권력을 획득함과 동시에 자기 아들까지 뭐로 만들어요? 진나라의 왕으로 만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여불위)은 투자를 잘 해 성공했지만 진정한(의미 있는) 삶을 산 것인지는 의문입니다.
여불위는 투자를 잘해 킹 메이커로서 어마어마한 권력과 명예를 얻었지만 나중에 자기의 아들인 진시황제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이 상황에 대해서 사마천의 기록은 이렇게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여불위 아들 정(진시황제)은 자기의 친부가 여불위라는 것을 모릅니다. 여불위는 진시황제에 의해 독주를 마시고 죽는데 사마천이 여불위에 대한 평가는 이렇습니다.
여불위는 ‘문’이였나 보다라고 합니다. 사마천이 여불위에 대한 평가를 ‘문(聞)’이라고 평가를 합니다. 즉 소문만 무성했던 사람이다. 그러니까 소문만 무성했던 사람이지 실제(실익)는 없었던 사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뜻이냐 하면 이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논어를 봐야 사마천이 여불위를 평가한 말의 의미를 이해 할 수 있습니다. 논어에 말(구절)이 있습니다.
공자한테 제자가 이렇게 질문을 합니다. 공자 선생님! 통달할 달(達)자 있잖습니까? 사람이, 우리가, 군자로서, 어느 정도 수준의 통달을 해야 수많은 사람들한테 저 사람 정말 통달된(한) 사람이야 라고 추앙을 받을 수 있습니까? 추앙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라고 질문을 합니다.
그러자 공자가 그래 그럼 네가 생각하는 그 출세라고 하는 것이 뭐냐? 통달이라고 하는 것이 뭐냐고 되묻습니다. 그러자 제자가 아! 그것은 바로 문이지요. 소문이 나는 것입니다. 라고 하며 출세가 소문나는 것입니까? 라고 다시 질문을 합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공자는 제자야 통달했다는 것은 소문나는 것이 아니야. 통달은 남한테 그 사람 정말 훌륭하다는 소문을 듣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통달이라는 것은 그 질박함 그 질박함(순수)과 의(뜻)가 있는 사람이라고 말을 합니다.
무슨 말이냐면 외형적인 소문보단 내면적인 통달이 더 중요하다고 공자는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공자가 하는 말을 잘 이해하고 여불위에 대한 사마천의 평가를 들으셔야 됩니다.
사마천은 여불위에 대해서 여불위가 어떻게 자초에게 자기의 돈을 투자를 해서 거대한 명예와 권력을 갖고 살다가 자기가 난 아들한테 독주를 마시게 돼서 죽었다고 하면서 아! 여불위는 아마도 소문만 무성했던 사람이었던 것인가? 보다고 하는 것입니다. 공자가 말한 소문만 무성한 사람이라고...
돈을 갖고 투자할 때도 많고 쓸 때도 많지만 그러나 그 돈을 어떻게 투자해서 그야말로 그 투자에 대한 성공을 이루었을 때 외형적으로 보이는 출세(성공)가 아니라 내면적인 자기 인생에 대한 당당함이 중요하다고 공자는 말을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마천이 여불위를 바라보는 평가는 별로 긍정적이지 않습니다. 여하튼 지금 각론하고 있는 주제는 ‘승리의 원천’은 뭐라는 것입니까? 물질이라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 승리의 원천인 물질이라는 것은 하나의 물질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뭐하고 연결돼야 한다는 것입니까? 물질을 하나의 승리와 어떻게 연관시킬 것이냐 이것이 중요한 것이고 또 그 승리는 소문만 무성한 승리가 아니라 진정한 승리는 내적인 당당함 바탕이 됐을 때 남한테 출세했다고 박수 받는 것이란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남한테 소문 좋게 나는 그런 출세는 어떻게 보면 내 자신이 보기에, 내가 좋은 것이란 것입니다. 그런 성공 승리(출세)는 진정한 성공이 아니란 것입니다.
진정한 승리는, 진짜 출세는 남들이 나의 출세에 대해 소문 내주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가 나를 바라봤을 때 참 내 인생이 당당하면 된다는 것으로 그것이 진정한 승리(출세)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것은 공자의 생각입니다.
손자와 공자의 생각을 비교(연결)해 보면 승리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물질이나 그 물질을 승리와 어떻게 연결시킬 거냐가 중요하다. 그리고 그 승리는 외적인 화려함과 수식(꾸밈)과 소문이 아니라 내적인 당당함이 진정한 승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승리에 있어서 물질과 정신의 그 뭐랄까 연관성을 지금 필자는 여러분들에게 각론(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주장은 손자만의 특이한 생각인 것입니다. 승리! 그러니까 승리에 있어서 내적인 당당한 승리를 하는 것의 핵심 속에는 뭐가 있는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까?
물질이라고 하는 것, 맹자(孟子)라는 책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들! 오십 보 백보라는 말 많이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오십 보 도망 간 것이나 백보 도망간 것이나 같다는 것입니다.
양나라 혜왕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맹자가 양왕에게 갔습니다. 그러자 양왕이 맹자라는 사람이 왔다니까 이리 와보라고 하면서 저 있잖습니까? 저는 우리나라를 잘 다스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양나라 혜왕이 고민했던 것은 어떻게 백성들을 끌어 모아 국력을 키울 수 있는가? 였습니다. 국민을 모으는 것이 굉장히 중요했습니다. 왜냐하면 나라(국가)의 힘은 어디서 나와요? 民에서 나옵니다. 민이 있어야 즉 일반 서민 계층이 있어야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땅을 개간 할 수가 있습니다. 즉 국토를 확장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생산을 할 수 있는 땅이 많아야 합니다. 땅은 누가 개간을 합니까? 민이 합니다. 개간된 땅이 많으면 그 땅으로 인해 뭐가 늘어나요? 민(백성)이 늘어납니다.
민이 늘어나면 조세 수입 즉 세금이 들어온단 말입니다. 세금이 들어오면 그것으로 뭐를 할 수 있습니까? 군대를 키우는 것입니다. 군대를 키운다는 것이 뭐예요? 그것은 병사들을 많이 징집할 수 있는 것이고, 병사를 많이 징집할 수 있다는 것은 강대국이 되는 것입니다.
또 民이 많으면 뭐를 할 수 있습니까? 여러 가지 부역(공사)을 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나라가 정말 큰 나라가 되려면 누굴 잘 모셔야 돼요.
바로 백성을 잘 받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당시에는 이민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백성들이 많이 모여 들어야 앞에서 각론 한 현상(내용)이 이뤄지는 것입니다. 즉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로 주변국들의 민이 옮겨와서 살게 할까 이것이 당시에는 제후들의 공통된 고민이었습니다.
양나라 혜왕은 맹자가 왔다니까 불러서 질문을 합니다. 저 말입니다. 우리나라에 주변의 백성들이 와서 많이 살았으면 좋겠는데 왜 백성들이 많이 모여들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라고 합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이민법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나라마다 돌아다니면서 얼마든지 자기가 나라를 선택하며 살수가 있었습니다. 혜왕이 맹자에게 나는 정말 백성을 위해(잘살게) 노력을 많이 하는 사람입니다.
민중(백성)을 모시기 위해서, 예를 들면 강이 있는데 강 한쪽에 흉년이 들면 반대쪽 풍년이 든 지방의 쌀을 이쪽으로 옮기고 흉년 든 지방의 사람들도 옮겨서 그야말로 흉년 든 사람이나 풍년 든 사람이나 다 같이 잘 먹고 살 수 있도록 그런 정치를 하고 있는데 왜 우리나라에 이민 오는 사람이 없습니까?
라고 질문을 하니까 공자가 말하기를 당신이 전쟁을 좋아하니까 내가 전쟁에 비유해 당신 나라로 이민을 오지 않는 이유에 대해 답을 하겠다고 합니다.
그러고는 두 나라가 전쟁을 하는데 전쟁이 시작도 되기 전에 어떤 병사는 죽으라고 뒤로 도망가다가 멈췄는데 그 멈춘 지점이 오십 보를 도망가서 멈추고 또 어떤 병사는 백보 도망가서 멈췄습니다.
그러니까 오십 보 도망간 병사가 백보 도망간 병사를 보고 야! 이놈 백보 도망갔구나 하고 웃었단 말입니다. ‘五十步笑百步(오십보소백보)’가 원문입니다.
오십 보 도망간 사람이 백보 도망간 사람을 보고 비웃는다. 결국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를 나무라는 것입니다. 당신이 지금 하는 정치나 이웃나라 왕이 하는 정치가 ‘오십 보 소 백 보’요.
뭐 특별하게 당신이 잘한다고 생각하지 마시오. 라고 말을 합니다. 이 말은 손자가 살던 시대나 100 년이 지난 시대에도 뭐가 중요한 것입니까? 결국 승리의 원천은 뭐예요. 물질적 조건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 입니다.
물질적 조건이 승리하는 조건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손자가 물질적 조건이 중요하다고 보는 것에 반해서 유교적 지식인이 보는 승리하는 조건을 토파해 보겠습니다.
군자 입장에서 승리를 하려면 물질적 조건보다 뭐가 중요하냐면 도덕적으로 완성된 德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도자가, 군자가 뭘 체득해야 하느냐 하면 덕을 체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덕이 있으면 사람이 모인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있으면 뭐를 할 수 있어요. 그 사람들이 세금을 내서 재물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재물이 생기면 그 다음은 뭐해요? 재물을 쓸 때가 생긴다는 거예요.
이것이 공자가 바라보는 승리의 조건입니다. 즉 공자는 승리의 조건을 뭐로 봤어요? ‘君子’ 도덕적 군자 그러니까 뭐로 본 거예요? 정신적인 측면으로 본 것입니다. 정신적인 측면으로. 그래서 우선적으로 정신적으로 완성된 도덕군자가 있어야 되고 그래야 사람이 모여들고 사람이 모여들어야 돈도 생기고 돈이 생겨야 쓸 때도 생긴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맞습니까? 맞습니다. 거 있잖습니까? 회사에서 회사를 경영하는 기업가가 덕이 있으면 유능한 직원들이 몰려오나요? 안 그런가요? 정신적인 요소를 강조한 공자의 주장에 비해 손자는 덕(정신) 보다는 물질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물질이 뭐예요? 물질적인 조건! 먼저 땅이 있어야 되고 땅이 있어야 개간을 하고 개간이 돼야 생산량도 많아진다고 했잖습니까? 생산량이 많아져야 상대방보다 내가 전력의 우위에 서고 그래야 내가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비슷한 시기에 산 사람이지만 어쩜 이렇게 생각이 틀려요. 거의 비슷한 시기를 같이 살았는데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완전히 다릅니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정신적 요소를 강조한 공자나 물질적인 조건(요소)이 승리의 원천이라고 바라본 손자 사이에 주장에서 우리 한국인이라면 어느 쪽에 가까울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필자 생각에 우리는요 정신적인 쪽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굉장히 정신 지향적입니다. 정신 지향적이라는 것은 뭐랄까 추구하는 덕이 있고, 사람을 평가할 때 돈 있는 것도 중요한 평가지만 그 사람이 도덕적인 것도 많이 따진다는(평가)것입니다.
필자는 이것이 한국인만이 갖는 특별한 사유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정신 지향적인 한국인의 특성이 과연 어디서 왔을까? 라는 생각을 한번 해봅니다. 저자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한국인 정서가 정신 지향적인가? 물질 지향적인가? 란 논문을 읽은 적이 있는데 일본은 손자 적인 사고(생각)고 한국은 공자적인 사고로 정신 지향적 사고를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것은 뭐 하지만 예를 들어서 한국 사람들이 갖는 기본적인 사고와 일본인들이 갖는 기본적인 사고를 비교해 보면 한국 사람들의 기본적인 사고는 내가 곧 하늘이란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런 생각 안 드는지요? 내가 저 하늘입니다. 하늘. 사람이 뭐예요. 내가 이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것을 정신 지향적이란 말로 표현하는 것이고 나라고 하는 사람이 바로 저 하늘과 동격인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곧 뭐예요. 사람이 곧 인내천 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본 사람들은 절대로 하늘과 내가 같다고 생각하질 않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천황은 내가 일본 국민이면 영원한 천황인 것입니다.
아버지가 오댕 국물 끓이는 사람이면 내가 아무리 출세를 해도 나는 뭐 하는 사람입니까? 오댕 끓이는 집의 아들인 것입니다. 그걸 철저하게 지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한국)는 아버지가 오뎅 국물 끓였으면 자식에게는 절대로 오댕 국물 끓이지 않게 하잖습니까?
너는 절대로 오뎅 국물 끓일 사람이 아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유(생각)는 도처에 있습니다. 일본 도요다 자동차 공장에 가면 일본 사람들을 노동자로서 여덟 시간 동안 자동차 조립 라인에서 바퀴만 조이라고 하면 열심히 조인다는 것입니다.
왜요? 나는 뭐예요? 여기서 바퀴 조이는 사람이니까 아무런 회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에게 여덟 시간 동안 바퀴를 조이라고 하면 조이기는 하는데 어이씨! 내가 여기서 바퀴 조일 사람이 아닌데...
난 뭐 할 사람이에요. 서울 본사에서 도장 찍을 사람인데 내가 여기서 이걸 하고 있지 라고 자기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하찮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니까 결국 나는 뭐예요? 하늘인데 여기서 이거 조일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에게 물어보면 다 그렇다는 것입니다. 내가 여기서 매일 밥하고 빨래할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난 뭐 할 사람이냐면 꿈이 있는 사람인데 내가 여기서 왜 밥하고 빨래하냐는 것입니다.
굉장히 정신 지향적 사유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라고 하는 사람이 곧 하늘이라고 하는 원대한 그 뭐랄까 거시기한 창조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것이 더 좋아요? 아마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대량 생산 체계인 소니(일본전자회사)에서 카세트 만들 때 일본 사람들의 물질지향 사유 방식이 훨씬 더 불량품이 적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조이면서 기분 나쁘면 그냥 막 조이고 기분 좋으면 잘 조입니다.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는 것입니다. 현대 산업사회에서는 이러한 사유 방식이 더 나은 방식라고 하는 것은 차별의식 측면에서 강할 수 있지만 그러나 역사라고 하는 것이 그렇게 쉽게 결정 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창조적이고 좀 더 뭔가 무한한 정신세계 속에서 나의 새로운 창조력을 발휘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것이 옳고 틀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필자가 말하는 것은 우리(한국)는 너무 이쪽(정신적) 사유에 치우쳐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손자병법을 통해서 어느 정도나마 이쪽 사유(물질적 사유)를 채워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무한한(정신적인) 창조력과 너와 내가 하나라고 하는 대등의식도 좋지만, 내가 곧 하늘이고 하늘은 나라고 하는 무한한 내 우주의 주인이 나라고 하는 의식도 좋지만, 그러나 내가 할 일은 이런 거고 내가 지금 이것을 완수하는 것은 그야말로 나에게 중요한 일이라고 하는 어떤 너와 나의 차별 의식과 물질적인 사유 방식도 이 시대에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손자가 주장하는 것은 결국 승리라고 하는 것은 이러한 무한한 정신적인 요소에 의해서 좌우 되지만 손자는 무엇을 더 강조하고 있습니까? 물질적인 사유 방식에 객관적이고 상대와 차별화된 모습을 더 강조하고 있습니다.
정신적인(공자) 사유 방식에 조금 더 치우쳐 있는 우리가 손자적 조직과 시스템 그리고 어떤 내 맡은 바 할 일을 다 하는 객관적 합리주의적 정신을 같이 발휘할 때 그야말로 무한한 창조력(발전)을 발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 상황(처지)에서 내가 할 일을 차근차근해가는 철저한 조직적인 엄밀함이 있는 그런 사람이 진정한 우리 한국인이 돼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을 합니다. 특히 우리 태권도인들은 태권도가 추구하는 옳고 그름(정의)에 의해 정의로운 사회구현에 앞장 설수 있도록 공자 사유와 손자 사유가 적절히 혼용(섞인)된 객관적, 합리주의적 정신을 바탕으로 행동하므로 태권도인(무도인)의 사명을 다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승리의 원천은 자본(물질)이다’를 각론 하면서 물질을 강조하는 이유는 우리에게 미흡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사유 방식에서 좀 더 고려돼야 하지 않을까하는 의미에서 여러분과 같이 23강 ‘자본을 확보하라’ 각론을 마치겠습니다.
다음 24강에서는 “변칙으로 승부한다”에 대해서 각론 합니다.
태권도정보연구소 / 청호태권도 / 신성환 관장
태권도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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