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도 태권도의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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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술은 인류의 시초부터 생존본능에 의해서 발달되어 온 것으로서, 현대에 이르러는 오락성으로, 건강상으로 또는 호신으로 변화되어 우리에게 가까이 있으며, 일부는 역사의 전래라는 과정을 들어 전통으로 인식되어 수련되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무술을 단순히 호신이나 건강상으로 수련코자 한다면 전통이니 우리 것이니, 정서, 근본 등을 따질 필요가 없을 것이나 여기에 고대와 현대를 잇는 역사나 민족적 일체감이 부여되어 전통이라는 의미가 부여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전통이 뜻하는 바는 예로부터 전해온 과정이나 또는 관습, 정서, 몸놀림 등의 함축을 뜻하며 전통무술에는 고유의 흐름과 맥을 나타내고 느낄 수 있어야 전통문화로서의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전통무도에 포함되어 행동체계를 이루는 동작 법이나 운용 법에서는 과연 이러한 원론적 의미의 근본이나 바탕에 대한 해석이 제대로 나타나고 있는지, 또 실생활에 어떻게 접목되어야만 문화로서의 가치와 영향을 논할 수 있는지 이에 대한 의문이 아니 생길 수가 없다.
특히 다른 무술과는 달리 태권도는 가라데와 관련된 우리 무도의 전통성이나 정통성에 대한 논란이 대두되고 있는 바 이러한 사안에 대한 해결의 접근으로서 요즈음 학계 및 뜻 있는 태권도인들 사이에서는 태권도를 비롯한 우리 무도의 정체성에 대한 조명이나 문화로서의 이해 또는 바탕이나 뿌리 등에 관한 많은 관심과 공론이 일고 있는데 이러한 공론은 고유이며 전통이 베어있는 문화의 소산임을 지향하는 우리 태권도의 바탕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아 잘못된 부분은 없는지에 근거하여 무도 태권도로 재 정립하는데 꼭 필요한 과정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진정으로 우리의 문화를 사랑하고 우리의 태권도를 사랑하고 우리의 전통을 위한다면 경기화된 태권도의 실체를 되돌아보고 잘못된 점을 파악하여 앞으로 태권도가 경기 화된 태권도뿐만이 아닌 무도 태권도로 재 정립하는 것도 태권도가 거듭날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경기 화된 태권도가 전통과 무술의 원리에 입각한 무도 태권도로 재 정립되기 위해서는 무술의 기본 원리에 대해서 바르게 아는 것과 잘못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깨닫는 것이 중요한 사안으로서 이에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전통의 의미와 전통무예와 관련된 전통에 대하여 검토하고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태권도는 해방 후에 창립된 각 관에서 전통으로 수련되던 당수(공수)등이 통합됨에 따라 자연히 전통무예 태권도라는 이름으로 승계되어 오늘에 이르렀음은 이미 많은 태권도 인들과 학계에서 밝혀진 사실로서 다시 언급할 필요가 없을 듯 싶으나 이것을 직설적으로 설명한다면 우리의 전통 태권도의 동작이 가라데의 동작 즉 타국( 일본)에서 넘어온 원리와 이론과 동작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말이기도 하다.
또 한 태권도에 붙어온 역사관은 사료에 입각한 증명을 근거로 했다고 보기보다는 전통에 대한 홍보적 의미가 짙은 당시(- 각 계열 관의 개관 -)의 것을 그대로 옮겨온 것으로서 오늘날과 같이 학문적 연구가 발달된 지금의 시각과 인식으로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전통의 의미와 무술의 수식어에 붙는 전통과는 본질적인 의미에서 상이함을 드러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상 정서 등 내면적인 문제에서부터 동작표현 등 행동적인 부분에까지 허점과 비합리적인 문제가 많이 노출되고 있다고 본다.
오늘날의 이론적 바탕에서 보면 우리는 틀에 박힌 형식만을 선호할 뿐이지 전통과 무술에 대해서 당연히 안다고 하면서도 정작 중요한 알맹이는 너무도 모르고 있으며 많은 태권도인 들은 이것에 대한 자각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
우리의 전통 무도 태권도의 동작이 가라데의 동작 즉 타국에서 넘어온 원리와 이론과 동작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행동체계의 구성요인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 수가 있다.
태권도 동작들은 과연 진정한 전통의 의미에 부합된다고 말할 수 있는가? 현재 수련되어지고 있는 동작들에 대한 원리와 이론을 설명할 수 있는가?
여기에서 가장 표면에 나타나는 논리가 일본에서 들어 온 무술이지만 우리가 발전시켜 우리 문화 화하였다는 논리로 주장하는 것인데 이러한 주장은 근본적 바탕이나 이치나 원리에서는 실질적으로 전통과 연계되어 나타나는 내면적인 이해관계나 행동적인 동작의 원리를 설명하거나 나타내지 못하고 있으므로 전통 무도 태권도라는 것에 대한 불신감을 해소하기가 어렵다고 본다.
이러한 현실에서 전통의 불신이라는 의문과 함께 현재의 태권도는 우리의 전통 무도 태권도로서 전통과 비 전통의 논란이 일며 정체성에 대한 혼란과 갈등이 야기되고 있는 것이며 여기에서 전통성이나 정통성에 대한 원론에서 현실과 원론사이에서 항상 부딪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태권도가 전통 무도로서 실생활에 접목되어 올바른 가치관을 세우며 바른 문화 전승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바로 이러한 부분에서 학문적 체계가 이루어져야 하며 이에 바로 알고 바로 수련하는 지혜(자세)가 필요하다.
지금부터 펴는 본인의 논리는 일선에서 지도자들이 수련생을 지도하면서 항상 느끼는 현재 경기화된 태권도 수련에서 오는 문제점들로 우리가 모르거나 또는 묵인 중에 스쳐 지나간 부분을 파악하고 전통무예(도)태권도를 재 정립하기 위한 동작원리를 찾는 과정이므로 여기에 나오는 원리와 이론과 이치에 대한 설명은 경기 화된(직선 화된/가라데 동작과 유사한?) 현 태권도 수련을 옹호하는 입장에 따라서 내용상 껄끄러운 면도 있다.
이러한 관계(가라데 동작과의 유사한 것)에 대해서는 태권도인 이라면 모두가 알만큼 아는 내용이며 이에 대한 개선 방안도 모색되고 있는 만큼 우리 것에 대한 자세한 실체를 알아야 형식과 틀을 깨는 거듭남의 변화를 시도할 수 있다는 의미로 이해해 주길 바라며 무도 태권도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서 잘못된 부분을 직시하고 개선해야 만이 지금의 태권도는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을 인지 해 주길 바란다.
전통무도 태권도에 있어서 전통에 대한 논란은 단순히 가라데에서 왔다, 아니다, 우리가 발전시켰다, 하는 논리 이전에 이러한 시비에 대한 전통무예의 진실성과 신빙성에서 오는 전통에 대한 불신의 원인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접근방법이나 연구과제가 필요하며 여기에는 철학, 정신, 원리, 이론 등 근원적 뿌리에서부터 문화적 가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법과 시각에서 접근할 수가 있다고 본다.
전통무도 태권도의 동작 수련은 전통의 본질을 바탕으로 하는 원리와 이치에 의해서 표현되는 행동(몸짓)으로서 이러한 동작의 수련을 통해서 전통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의미에서 더욱 더 세밀하게 접근하여 보면 우리의 정신과 정서와 관습을 나타내어야 하는 동작체계에서 가라데(당수와 공수)의 도입에 따른 남(일본)의 동작 원리 이론 수련방법 등이 나타나고 운용된다는 점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전통 무도 태권도와는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한 분석 및 해석과 이해의 과정이 요구된다.
따라서 현 태권도 수련에서 가장 현실적으로 피부에 와 닿는 주된 부분은 실지 수련하고 있는 수련동작 법에서 찾을 수 있는데 이러한 동작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전통과 비 전통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또 이의 해소를 통해서 경기 화된 현 태권도의 문제점을 파악하여 진정한 전통무도 태권도로 재 정립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당수(공수)를 통하여 들어 온 동작 수련 법이 우리의 전통에 어떤 영향과 어떤 의미가 있는가? 는 실지로 우리가 수련하고 있는 태권도 동작들의 수련체계에 비추어 볼 때 형식에 의하여 만들어진 틀의 형태로서 수련되고 있으며 이러한 동작원리와 동작 수련 법은 태권도 뿐만이 아니라 우리 무도 전반에 스며들어 전통무예(도)의 이름으로 수련되어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과연 이러한 동작과 몸놀림이 전통무예(도)의 의미에 부합되고 있는가? 정말로 우리 전통무예(도)로 수련되어도 무방한가? 몸놀림(동작표현)의 이론과 수련상의 원리가 맞는가?
하는 의문과 함께 이러한 동작들이 가진 본질(문제점)이 우리 전통무예의 행동체계(수련방법/내용)에 있으면서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동작의 성격이나 의미를 파악하고 분석하여 볼 필요가 있다고 보며 그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수련 동작체계에서의 문제점 현재 경기 화된 태권도의 수련 동작은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 변형되거나 다르게 전수될 수도 있는 것으로서 더구나 다른 곳(- 가라데? - 각 계열관 창립자(원로 관장) 및 태권도 명명자인 고 최홍희에 의하면 -)에서 전해온 것으로서 잘못되었는지 옳은 동작인지의 확인 여부도 불투명한 동작으로서 끊고 자르고 당기고 하는 절 적인 의미와 강적인 의미로 수련되고 있는 것으로 현재 경기 화된 태권도는 우리의 전통 무도 태권도로서의 형식과 틀의 형태를 이해할 수 있는 기본원리와 이론이 없다고 본다.
따라서 현재 수련되고 있는 경기화된 태권도 수련 동작에서 겨루기(발차기)기술을 제외한 손동작(기본 동작 및 품새)들은 어디까지나 남의 나라(일본)의 환경이나 정서에 따라 변화된 수련 동작들로 어떤 경로를 거쳐 정립된 동작(- 각 계열관 창립자인 원로 관장은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아니 언급을 안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생각(인지)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 -)인지 모르고 수련하고 있다고 본다.
현재 태권도 수련 동작들은 남의 나라(일본)의 환경이나 정서에 따라 변화된 수련 동작들(법)로 우리에게도 타당하고 동등하게 적용된다고는 볼 수 없으며, 잘못 전달(수련되고 있는 동작)된 원리와 이론과 수련 동작들(법), 그리고 몸놀림(움직임)이 우리의 전통과 전통무예(도) 태권도로 인식됨으로서 우리의 정신과 정서 몸놀림 등이 잘못 인식되고 있다고 본다.
동작의 현실성(우리의 몸짓/움직임)에 대한 이치를 모르고 뜻과 의미가 이해되지 않는 동작의 수련으로 동작의 실체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으므로 태권도 수련의 의미(정서/정신)를 상실하여 신체적인 동작만을 중점으로 즉흥적이며 임기응변적인 이론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보며 이는 신체의 변화에 의한 기술의 응용에 한계를 가져오고 정신과 신체의 단련(수련)에서 오는 이득(효과)이 빠진 수련으로 흐르고 있는 것이다.
결국 현재의 경기 화된 태권도 수련은 형식적인 동작만을 수련하기 때문에 신체의 움직임에서 나타나는 동작의 이치를 알지 못하며 결과적으로 태권도의 근본바탕(정신수양)과 세부적인 이론을 나타낼 수 없다고 본다.
이는 전통무예(도) 태권도라고 표방하면서도 정작은 전통과 무도의 원리가 적용되지 못한 수련으로서 현재 태권도가 전통무예(도)태권도로서 전통의 원리나 무술의 원리적 측면에서 수련되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수련을 통해서 전통의 원리나 무술의 원리적 측면이 퇴색되고 상실되는 것으로 전통 무예(도) 태권도와는 거리가 먼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동작에 나타나는 정서의 표현에서의 문제점 환경과 상황이 다르고 민족성과 정서와 표현이 다르면 표현과 동작의 수련방법도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현재 경기 화된 태권도 수련동작(발 차기 기술을 제외한 기술)은 환경(생활방식과 습관)과 민족성이 다른 타국(일본) 무술(가라데)에서 영향을 받은 수련동작인 만큼 정서적 표현 몸놀림 수련동작(법)들이 우리의 정서와는 다르게 나타날 수도 있는 것이다. 현재 경기 화된 태권도 수련에서 몸놀림으로 나타나는 동작 표현(- 끊고, 자르고 -)은 신체전체의 움직임에서 연결성이 없는 끊어지는 몸놀림(직선 화/강권형태)형태로 수련되고 있으니 이것은 타 민족(일본)의 환경에 따라서 변화된 정서의 흐름에 따른 동작표현으로서 그것이 우리의 정서나 동작이나 몸놀림과 동일하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사람이 하는 동작에 내 동작과 네 동작을 구별할 수는 없다고 하고 또는 우리 고대사에서 우리에게서 전해져 간 것이니 우리 것이나 다름없다는 논리로 현 태권도 동작들을 우리의 전통이 베인 동작으로 수용되어도 무방하다는 논리를 펴며 동일성을 부여하지만 여기에 커다란 모순이 있는 것이다.
문화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 보자. 문화는 환경과 민족정서에 따른 변화의 형태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에게 전달된 태권도 동작(발 차기를 제외한)들은 타국(일본)의 문화에서 발전한 형태로서 우리의 문화로 보면 변질된 문화의 형태가 태권도 동작으로 나타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심각하게 고뇌해야 될 부분은 바로 우리가 간과했던 부분으로서 타국의 문화형태가 우리에게 전달됨으로서 다른 환경에서 생기는 과정이나 민족간 정서의 차이에서 오는 변화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정서의 차이에서 오는 변화된 부분이 우리의 정서적 표현이나 몸놀림과 상충되어 이질 감을 형성하고 괴리를 주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특히 현재 경기 화된 태권도 수련에서 발 차기 동작을 제외한 모든 요소들에서 우리의 정서적 표현이나 몸놀림과 상충되는 동작들이 수련되고 있는 점은 전통무도(예) 태권도라고 주장하는데 많은 모순(의문점)을 가지게 한다.
셋째, 역사에서의 문제점 태권도의 역사에 있어서 가라데 동작의 개입이라는 관계로 가라데 동작을 표절 내지는 수용한 동작이란 것을 반론하기 위해서 고대 역사와 관련하여
- 각 민족의 고유(전통)무술이란 것은? - - 무용총의 금강 막기를 태권도의 금강 막기라고 보는 것은 무리라고 본다. 모든 무술에서 금강 막기를 자신들의 동작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다른 예로 몸통 막기를 놓고 볼 때 무술이란 위험요소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행위가 체계적인 몸짓(움직임으로)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할 때 각 무술에서 위험요소를 막기 위해서 하는 행위(몸짓)는 가장 적절한 형태를 유지할 것이다.(각도는 조금 틀려도)
그럼 몸통 막기를 볼 때 5000년 전에 창안된 무술에서도 사용할 수 있고 현대에서 창안된 무술에서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몸통 막기란 하나의 몸짓을 놓고 볼 때 5000년 전의 무술이나 현대에서 창안된 무술을 같은 무술이라고 봐야 하는 명제가 생긴다.
그것은 다른 말로하면 무술이란 거슬러 올라간다면 모두 한 계통이라는 설정이 설정된다. 단 이러한 무술에 본래 자국의 전통무술이라고 하는 것은 영역(종류)은 다르지만 앞에서 거론한 전통의 의미에 입각한 민족정서가 내포된 동작의 표현을 담고 있는 무술들을 전통 무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고유며 전통무예라 일컬으며 마치 삼국시대부터 전해 온 것인 양 오천년의 역사와 한국적 얼이 들어 있는 전통무술이라는 해석은 고대와 현대의 연결에서 억지와 무리가 따르며 이는 교육적 관점에서도 옳지 안다고 보며 이것이 태권도 역사에 대한 왜곡이라고 본다.
여기에서 태권도가 민족 고유 전통 무예로 전통을 계승한 의미를 갖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며 동양 권으로서 고대사부터 교류가 있었다는 점에서 일부는 우리의 전통과 일치되는 면도 있기는 하나 이것은 우리에게서 양생되거나 전해온 동작이 아닌 근대사에 들어 우리 역사에 개입된 남(가라데)의 동작으로서 우리 바탕의 흐름이 있다고 볼 수는 없는 동작이라는 것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고 본다.
현재 태권도의 각 동작들을 면밀히 분석하여 보면 각 동작이 갖는 몸짓 표현과 정서의 본질이 우리 정서와는 사뭇 다르며 원리 측면에서는 원리가 없는 틀에 의한 동작만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을 역사와 관련지음으로 역사와 전통의 왜곡으로 이어지는 요인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동작(가라데 동작)을 우리 전통으로 연결한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모순을 지적하지 아니할 수 없다.
전통 무예(도) 태권도의 역사에 있어서 우리는 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동작에 대한 근본이치도 모르고 환경과 정서에 따른 표현과 수련동작의 차이가 있을 수 있는 것을 역사와 연결하여 우리의 전통으로 기정사실화 함으로서 수련동작들(법)이 우리 정서와 전통사이에서 오는 모순들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수련동작들은 해방 후의 각 계열 관 창립과정과 창립 원로 관장들의 경력이나 무력을 생각해 보아도 우리의 전통과 실체의 다름이 여실히 드러나는 데도 불구하고 아전인수 식으로 해석하여 사실인 척 하는 것은 진실의 결여이며 거짓 수련(교육)으로서 순수해야 할 우리의 전통 무예(도) 태권도에 가라데라는 굴레를 씌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태생 적 결점을 남겨 놓았을 뿐만 아니라 무도 태권도의 원리와 우리 전통의 유지 및 교육(수련)에 있어서도 큰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고 본다.
우리 전통의 배경과 관련되어 특히 태권도 역사와 연결된 당수(공수)도란 무술의 출처에 대하여 우리 것이 돌아 온 것이다 하는 자의적인 해석을 함으로서 태권도의 정당성을 유지코자 하나 이러한 무술의 출처가 어디서 왔는지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라고 본다.
도입된 동작의 배경에 대해서 가라데라는 반응에 민감한 일부 태권도인 들은 오끼나와데를 들고 나와 자위를 꾀하고 일부는 이것은 한민족에게서 전해진 우리 것이다라는 견해로서 동작의 출처에 차이를 두어 위안을 삼으려 하나 그것은 역사의 과정일 뿐이다라고 본다.
현재 태권도가 오끼나와데에서, 가라데에서, 중국에서 왔던 간에 또는 오래 전에 한국에서 건너간 무술이 되돌아 왔던 간에 환경과 민족성에 따른 변질이 없었다고 장담할 수 없을 것이며 이렇게 변질된 동작이 우리의 전통을 나타낼 수 없다는 점은 명명백백하다.
태권도 태생이 가라데와 무관하거나 우리의 것이 일본에 건너가 발전을 하여 되돌아 온 것이란 논리를 합리화하기 위하여 태권도 수련동작의 명칭을 바꾸거나 기술체계를 바꾼다고 해결되거나 고대 역사를 들어 우긴다고 희석되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며 또 역사를 새로 정립하거나 만든다고 해결될 문제는 더욱 아니다라고 본다.
모든 무술에서 이러한 변질을 간과하고 무시한 결과가 오늘날 동작의 표현(운용/수련)에서 억지가 생기는 것이며 특히 태권도에 있어서 수련동작의 문제는 물론 태생적인 역사에도 문제가 생기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변질(변형)에 대하여 깊이 인식하고 연구해 태권도의 전통성을 타당하게 확립해야 한다. 태권도 수련에 있어서 기존의 각 동작들(법)을 수련생에게 지도하는 지도자들에게 동작의 원리와 출처에 대한 질문을 하면 다음과 같이 말을 한다.
"우선 허리를 짜서 절도 있게 강하게 하라." "왜 이렇게 합니까? 하고 물으면..." "그건 옛날부터 그렇게 내려 왔으며 나도 그렇게 배웠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 현 실정이다.
여기서 태권도의 발전 과정상 옛날부터 내려 왔다는 의미는 우리의 역사에서 우리의 전통으로 내려 온 것이 아니라 가라데 동작을 배워 왔음을 의미하는 것이며 여기에서 전통을 바탕으로 하는 태권도 수련동작법과 몸놀림에 대한 의문이 생기는 것이다.
뚜렷한 원리나 이론을 설명하지 못하고 나도 그렇게 배웠다는 것은 적합한 원리나 이론에 근거한 타당성 있는 수련을 하지 못한 것을 말하는 것이며 이는 형식적인 동작의 수련을 의미하는 것으로 태권도가 전통이나 전통 무도 태권도로서 원리와 이론에서 우리의 전통과는 거리가 먼 동작들이나 이론에 의해서 창안된 것으로 보아야 하고 따라서 이에 대한 검증의 요소가 생기는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의 전통무도 태권도는 오래 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전통무술로서가 아닌 일본 가라데 동작의 도입과 전통(이어져 내려오는)이라는 서로 맞물릴 수 없는 현실적 사실을 일본 가라데의 원리와 동작과 이론으로 우리의 역사에다 연결시켰다 뿐이지 우리의 전통에 입각한 이론적 설명이 빈약함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태권도에서 나타나는 비합리적 요소들은 정서나 감각적인 면에서 우리 것임을 확연하게 증명하거나 우리의 전통적 바탕의 흐름을 표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관계는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가?
현재의 태권도 수련동작에서는 앞에서 제기한 우리의 몸짓이나 정서가 나타나지 않는 등의 문제점들은 태권도 동작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되지 않은 동작들(법)을 역사적 사실로 포장하여 기정사실화 함으로서 우리의 정서와 표현과 수련동작 법에서 나타나는 몸놀림이나 기술적 단점과 정서의 차이에서 오는 이질감과 괴리까지도 우리 전통의 흐름 안에 인정하고 감수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현실은 우리의 정서나 몸놀림에 대한 변질을 부추기고 남의 몸놀림을 우리의 몸놀림으로 오도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정신적 바탕과 기술적인 문제에도 장애를 일으키고 있으며 많은 내면적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현상은 태권도라고 명명된지(해방 후)50년이 넘은 지금 현 태권도에서 여실히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태권도뿐만이 아니라 실생활에 적용되는 문화의 조성이나 전통의 계승이라는 부분에서도 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은 논란의 요지가 발생하고 있으며 특히 태권도에 있어서는 역사, 원리, 이론부분에서 분명히 검증되어야 하는 요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연히 이러한 문제를 연구하고 재 정립해야 할 단체(국기원/대태협) 및 태권도인 들은 단지 윗대(각 계열관 창립자/원로관장)에서 배웠다는 유대 적인 논리에 집착하여 원리를 찾을 생각을 못하고 있다.
또는 알아도 모르는 척 외면하며 당연시 우리 것으로 받아들이거나 역사와 현실 사이에서 진실을 찾고 밝히기보다는 오히려 이를 감추고 남의 동작을 수련하면서 우리의 전통을 찾고 도를 찾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전통무도 태권도는 남의 것을 우리 것이라고 우기기만 하였지 정작 우리의 이치와 전통무술의 원리에 따른 근본적 바탕을 찾을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다. 아니 안 했다고 볼 수 있다.
어차피 여러 가지 변명으로 전통이라고 우길 바에야 동작 안에 잠재되어 있는 가라데의 잔재만이라도 버릴 노력을 해 보아야 가치창조의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반문하고 지금부터라도 이러한 무관심에서 나온 결과를 인지하고 각성하여 새로운 전통무도 태권도의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태권도에 있어서 우리는 당수(공수)를 통한 가라데 동작의 도입(발차기 기술은 제외)에 따른 문제점을 분석하여 보았으며 이러한 관계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것이 현재 경기화된 태권도임은 싫든 좋든 누구나 다 알고 인정해야 하는 사실이다.
전통무도로서 수련하는 태권도 수련행위는 우리 몸에 우리의 정서가 깃든 정서적 표현 몸짓(행위)을 직접 익히(수련)는 것이므로 기본동작을 위시한 모든 수련동작(행위)에 전통적 정신과 몸놀림을 설명할 수 있는 원리와 이치가 있어야 하며 그에 따른 수련으로 이루어져야 의미가 깊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고유이며 전통무도라고 말하고 있는 현재 경기화된 태권도를 어떤 시각으로 보아야 할 것인가? 문제는 없을 것인가? 하는 생각을 아니할 수 없다.
따라서 이에 대한 본인의 시각(관점)에서 문제점을 다시 한번 짚어보고 그런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태권도는 우리의 전통 무예(술)에서 계승되었던, 가라데를 모방했던, 새로이 창안되고 태권도라고 명명이 된지 50년이 지난 현재 외형상으로 많은 변화와 발전(경기 화되어)을 하여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문화로서 자리를 굳히고 있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특히 태권도를 이루고 있는 3대 요소인 기본동작(수기동작), 품새, 겨루기 중 겨루기 기술에서 스포츠 화된 경기 겨루기에서(겨루기 기술/경기 화된 겨루기)는 순수한 우리의 노력으로 무술에서 스포츠로 발전시킨 새로운 문화의 창조로서 세계 속의 태권도로 정착시킨 것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는 하나 흠 잡을 때가 없다고 본다.
따라서 이 부분은 태권도의 한 영역으로서 스포츠 화된(경기 화)된 태권도 영역으로 지속적인(그대로) 발전을 유지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전체적인 태권도에 있어서 과연 전통을 간직한 무예(도)로서도 우리의 문화를 대표할 만큼 말 그대로 고유이며 전통무예(도)로서 인식하고 수련되어도 무방할 만큼 근본적인 바탕에 문제가 없는가 하는 물음에 자신 있게 "그렇다"라고 답을 할 수가 없다고 본다. 애석하게도 그러한 물음에 자신 있게 "그렇다"라고 답을 하기에는 전통의 바탕과 무술의 근본 원리와 이치에서 이론적인 뒷받침을 못하고 있는 것을 부인할 수가 없다.
그럼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는 전통의 문제점에서 나타나듯 우리의 정서적 바탕이나 표현의 방법과는 맞지 않는 수련동작 법이나 운용방법들이 우리의 수련과정으로 설정됨에 따라 태생에서 이어받은 문제점(가라데 동작의 표현)이 그대로 존재하며 노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태권도가 창안 당시와는 달리 외형상(형태상)에서 많이 발전하고 변하였다고는 하지만 근본적인 신체 전체의 움직임과 손동작의 움직임에서는 아직도 가라데 동작 법이라는 요소가 있으므로 전통무예(도) 태권도라는 이름 하에 이와 같은 비 전통적 요소(타민족 정서)까지 포함됨으로서 전통성에 대한 의구심이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문제점에 대한 내용을 전통의 원리와 이론적 측면에서 정리하면 다음과 같이 집약할 수 있다. 첫째 우리 동작표현(몸짓)에 대한 원리와 이론이 없다와 둘째 우리의 정서적 표현이 없다로 정리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태권도가 가라데 동작의 틀을 도입한 형식으로서 그 결과 우리 전통의 흐름이나 맥을 설명할 논리가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무술을 설명할 역사나 근거나 원리, 이론, 동작 등 내세울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요즈음 일각에서 새로운 태권도 품새 제작에 관심을 보이며 새로운 품새 제작의 필요성을 품새의 리듬이나 구조 동작 등에서 나타나는 가라데 동작과의 유사성을 이유 중 하나로 들고 있는데 이것은 전통의 문제점에서도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태권도의 출생에서 이루어진 가라데 동작과 형을 모방한 결과의 후유증과 미비점을 이제서야 인식한 것이라고 본다.
이것은 결국 태권도가 우리 것을 바탕으로 출발하지 않았음을 시인하는 것이며 태권도 구성의 바탕에 우리의 전통과 무술에 대한 근본 바탕이 없었음을 말(인정)하는 것이다 그동안 이 부분에서 얼마나 우기고 억지 주장을 했었는지 생각해 보면 알 것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기술적이나 응용성에서 스포츠로서의 태권도에 식상해 하고(외국에서도 심각함) 무도 태권도로의 회귀나 무술로서의 수련을 바라고는 있으나 설사 그런 회귀나 수련을 원하고 있어도 원리와 이론 및 행동체계에서 전통의 바탕과 무술의 근본 원리와 이치에서 받쳐주지를 못하고 있기에 현재의 태권도 체계에서는 아무리 무도태권도로의 재 정립을 외쳐도 근본적으로 가라데를 모방했다는 시비에서 벗어 날 수가 없는 것이다.
위에서 주지한 사실에서 보듯이 태권도는 그 동안 발전시켰다는 데에만 도취되어 외형적인 발전성과(스포츠 태권도로서의 세계화)에만 관심을 두었지 전통 무도 태권도로서의 기초 및 원론적인 이론 개발(논리 발전)에는 무관심하였음을 인정하고 이에 대해서 대처를 해야 한다고 본다.
따라서 태권도는 문제성 있는 이러한 바탕을 유지한 채 우리의 전통무도 태권도라고 주장하며 전통의 의미를 부여하여 수련하고 또 수련되어 지고 있으나 이는 실제로는 전통무도 태권도에 부합되지 못하는 것뿐만 아니라 오히려 원리와 동작과 몸놀림에서는 전통적 사고와 몸놀림에 대한 행동적 표현에서 거스르고 있다고 보며 이는 전통의 본질을 흐리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이러한 결과는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가? 라는 의문에 대한 답은 스포츠화된 발차기 경기로는 인정을 받았으나 손과 몸놀림에 있어서는 원리와 이치가 없는 형식적인 동작을 수련하는 결과로 무술의 깊이를 느끼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고 이는 곧 성인들의 운동이 아니다, 배울(수련의 깊이)것이 없다는 등 아이들이나 하는 운동으로 치부되고 있는 것이 현 태권도의 현실이다. 이것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무도로서 말은 국기 태권도라고 하지만 진정한 국기 태권도의 입지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다.
태권도가 역사와 조상의 얼이 있는 전통무예(도)라고는 하나 현재 우리 몸(정서)에 맞지 않는 원리와 이론과 동작을 수련하고 가르치면서 전통과 고유를 말할 수는 없다고 본다 이치와 근본을 알 수 없는 남의 동작(가라데 동작)에 아무리 해석을 잘하고 훌륭한 철학과 정신을 부여해도 그것은 마음과 몸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현재 수련되어지고 있는 태권도 수련은 우리 고유의 전통무술에서 표방하는 민족 고유의 철학과 정신을 설명하지 못함은 물론 원리와 이치도 설명하지 못하고 있으며 우리의 정서가 녹아 있는 몸놀림도 나타내지 못하고 있는데 태권도 수련을 통해 어떻게 우리의 전통과 정신을 알며 몸놀림을 알 수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현재 수련되어지고 있는 경기 화된 태권도는 원리와 이치에 따른 근본바탕의 변화 없이는 아무리 역사의 구성을 튼튼히 하고 정립을 한다 하여도 그것은 조작을 위한 새로운 조작일 뿐 설득력이 없으며 아무리 발전을 한다고 해 보아야 우리의 정신과 문화를 더욱 깊이 해치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가라데 동작이 도입된지 50년이 넘었으며 태권도라는 이름이 명명되어 세계정상에 우뚝 선 지금 대한민국을 대표한다는 태권도란 문화가 동작체계에 있어서 우리 민족 고유의 정서와 연계된 근본바탕을 설명하지 못하고 우리의 원리와 이치에 따른 동작으로 수련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민족적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고 세계화된 태권도로 대한민국 고유의 전통무술이란 것에도 걸맞지 않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현재 스포츠화(경기화된)된 태권도가 우리 고유의 전통을 계승한 진정한 전통무도 태권도로 재 정립되기 위해서는 냉철히 현 태권도를 분석하여 전통으로 포장된 가라데 동작(수련)법, 원리, 이론 등을 과감히 버리고 납득할 수 있는 근거와 바탕과 이를 증명하는 원리와 이치에 따른 우리 정서에 맞는 수련동작으로 재 정립해야 된다고 본다.
일본(가라데)문화와 군사문화와 시범문화에 물들은 보여 주기 위한 태권도가 아니라 실지로 몸에 스며들어 느끼고 표현할 수 있는 살아 있는 말 그대로 우리 고유의 무술로 승화 시켜야 될 것이다.
이의 실현을 위해서 발전시켰다는 사실 하나로 무조건 우리 문화며 전통이라고 우길 것이 아니라 전통과 관련되어 말 할 수 있는 동작의 바탕과 몸놀림의 측면에서 좀 더 깊이 있는 진지한 연구와 그 결과에 따른 논의가 이루어 져 태권도인 모두가 공감하는 무도 태권도로 재정립이 되어야만 현재 세계화된 스포츠 태권도와 더불어 지속적인 발전은 물론 명실상부한 종주국 태권도의 위상을 공고히 할 수 있을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새로 출범하는 세계 무도 태권도 연맹은 물론 기존 단체들의 혁신적인 의식전환과 각고의 노력이 요구된다.
오늘날 우리 전통과 가라데류의 관계에서 생긴 현대무도의 모순점(실책)은 가라데라는 형식을 우리의 고대사와 일본과 관련되어 나타난 우리 역사 속의 한 과정과 부분으로서만 관심을 두었지 문화의 변화를 생각하지 못한 결과에 있다고 본다.
우리는 이러한 관계가 태권도를 전통무도 태권도로서 떳떳하게 내세우거나 원리와 이론을 설명하기에도 부족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전통의 흐름을 거스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때문에 오늘날 태권도에 있어서 당수(공수)의 도입이라는 사실은 태권도에 있어서 아킬레스건(Achilles)이며 뜨거운 감자다. 삼키자니 동작상의 괴리를 설명할 수 없고 뱉자니 태권도의 역사를 설명할 수가 없고 이래저래 인정할 수도 부정할 수도 없는 관계인 것이다.
그래서 과거에는 이 부분은 절대 거론해서는 안 되는 금기사항이었으나 이제는 감추거나 두려워 할 필요가 없으며 더구나 이를 피하여서는 더욱 더 안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인식의 전환을 필요로 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는 생각을 이렇게 할 수도 있으며 저렇게 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전환하여야 하는 것이다.
단순히 전해 왔다는 속설 속에서 형식의 틀에만 매달리고 윗 대에서 답습한 이런 동작이 전부인 줄 알고 있는 인식을 깨어야 하고 또 이러한 동작만을 고수하고 유지하려고 하는 보수적 성향에 대한 생각들을 전환하여야 한다.
이런 인식과 동작을 고수하고 유지하는 것은 그것은 가라데의 범위(범주)를 벗어 날 수가 없는 것이라고 본다. 무조건 우리 것이며 이렇게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의 틀을 깨고 가라데류의 동작은 우리 전통적 시각에서 보아 정서적으로 안 맞는 부분이 있으니 이를 분석하여 우리가 파악 못했던 부분을 찾아내 재 정립한다는 생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의 사상과 원리와 몸놀림을 찾아 그 숨결을 느끼고 몸으로 표현하지 못한다면 과거에는 타(일본의 식민지 생활)에 의하여 우리 것이 무너졌으나 오늘날에는 우리 손에 의하여 스스로 사라지게 하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부터라도, 이러한 전환의 의식 속에서 나타나는 현실을 인정하고 미처 생각하지 못하였던 부분을 찾아 채워 넣어 명실 상부한 전통 무도 태권도로 재정립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현재의 태권도 수련 동작에서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다 태권도에 도입(수련되는)된 동작(발 차기 동작은 제외)은 타국(일본)의 환경과 정서가 포함되어 있으며 동작표현의 원리를 모르고 있으며 우리의 정서적 표현에 안 맞는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근거로 우리의 무술적 시각과 전통적 시각으로 보았을 때 현재 경기 화된 태권도는 우리의 무술원리와 전통적 흐름을 대표(국기태권도)한다고 하기에는 문제가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가 없다고 본다.
여기에서 전통무도 태권도로 정립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라는 반문을 해 볼 수 있으며 거기에 대한 대답으로는 동작표현의 원리가 있으며 우리정서 표현에 맞고 우리의 이치에 맞는 동작법(수련법)을 찾아야 한다고 보는 것이며 이를 바탕으로 무도태권도의 이론 정립에 대한 안을 제시한다.
항상 본인이 펴는 논리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고 보며 이로 인해서 좀더 나은 무도 태권도의 이론이 정립되는데 도움이 되고 일선 지도자들의 태권도 이론체계가 풍부해 질 수 있기를 바라면서 논리를 펴도록 하겠다.
우선 앞에서 지적한 문제점들을 해소하기 위해서 동작의 원리를 찾고 우리의 정서적 표현을 찾으면 되는데 그 방법은 동작의 원리를 모르면 동작을 낱낱이 분석하면 될 것이고 정서적 표현을 모르면 정서를 느끼면 될 것이다.
형식과 틀을 버린 신체의 이치에서 나온 실체의 바탕에서 순리에 따른 이치를 찾아 좋은 점이 있으면 수용하고 버릴 건 버리는 지혜와 이치로 풀어 나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존의 형식을 버리고 우리의 동작을 찾는 요령은 다음과 같이 두 가지의 방법이 있음을 말 할 수 있다.
하나는 사상을 바탕으로 하는 신체의 움직임에서 동작을 찾는 방법이고 또 하나는 가라데(당수, 공수)의 동작을 분석한 후 신체의 이치에서 비교해서 동작을 찾는 법이 있으니 이것은 접근 방법은 다르나 결과는 동일하게 나타날 것이며 이러한 과정은 다음과 같은 순서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첫째, 현재 수련되고 있는 동작을 깨어 분석하거나, 신체에서 나오는 움직임을 관찰하면 신체의 이치가 파악되고 둘째, 우리 문화의 흐름과 사상을 파악하고 이해하면 우리가 간직한 정서적 표현을 나타내게 되고 세째, 위에서 느낀 과정을 신체에 움직이는 이치에 대입하여 차근차근 풀어 나가면 동작화의 과정과 순서를 알게 된다.
여기에서 우리의 몸에서 나오는 신체의 이치를 알게되고 우리 것에 대한 정서의 흐름과 민족성의 바탕을 이루는 사상을 이해하게 되는데 이러한 것은 우리가 항상 간직하고 있으며 우리가 안다고 자신하면서도 관념적으로 이해하거나 무심히 흘려 보내 실상은 그 동안 등한시하였던 부분인 것이다.
또 설사 안다고 하여도 이것을 동작 화하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에 그 이치를 이해할 수가 없었으나 본인은 우연한 기회에 그 방법과 과정을 찾았다.
이러한 이치에 의하면 해방 후 급조된 역사의 조립으로 인하여 발생한 가라데의 멍에를 벗어버릴 수 있는 순수한 우리의 원리와 이론에 따른 정서와 표현이 깃든 우리의 수련동작들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옛 것을 찾아 전통(시간적/역사적)을 잇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근본과 바탕을 유지하고 설명할 수 있는 원리로서 현대에 맞게 전통(정서적) 무도 태권도로 재 정립하자는 것이며 이러한 이치는 그 동안 잃어버린 전통의 몸놀림과 정통무술의 새로운 이론을 깨달을 수 있는 것으로 이것은 체육학적으로는 신체와 동작의 이치를 밝히는 것이고 전통적으로는 우리의 정서가 깃든 도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 동안 쌓아온(경기화 된 태권도에 있어서 발 차기 기술)과학적 이론과 전통적 이론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 운용이 된다면 태권도에 있어서 그 동안 의문시되었던 태생에 따른 가라데의 아류니 동작을 베꼈다느니 하는 시비 적 요소는 물론 전통 무도(예)로서의 확고한 위치를 확보하는 계기로 명실 상부한 전통의 맥이 연결되는 바른 전통, 바른 무술, 바른 수련, 바른 무도를 이룰 수 있는 길이라고 본다.
신체의 이치 및 신체의 움직임 이해
무술이란 신체의 움직임을 상황에 맞게 활성화하는데 있다고 본다. 따라서 무술을 배우(수련)면서 신체의 이치를 모르고 형식적인 동작만을 목적으로 하면 그것은 껍데기만 배우(수련)는 것이다. 그러나 신체의 이치를 알면 동작의 이해에 빨리 접근할 수 있다고 본다.
신체의 움직임을 가만히 살펴보면 움직임에 대한 자연적인 이치를 파악할 수 있다. 여기서 자연적인 신체의 움직임이란 허리의 움직임에 따라 나타나는 손과 발의 움직임을 말하는 것으로서 우리가 그 동안 뜻도 모르고 수련하던(태권도 동작/가라데류)의 동작을 낱낱이 분석해 보면 이러한 이치에서 나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것이 바로 동작(행위)의 분석에서 발견한 신체의 이치이며 신체에서 나오는 동작의 이치를 알면 무술(태권도)의 행위를 이해하고 변형할 수 있는 것이다.
신체의 움직임에 대한 동작의 이치는 허리와 손과 발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이치로서 우선 허리와 손 허리와 발 허리와 손과 발로 구분하여 이치를 살필 수 있으며 다음과 같이 단계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1단계
이것은 신체가 움직이는 이치적으로 표현하면 허리의 회전에 의한 두 가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고 사상적 표현을 빌린다면 음, 양의 해석에 따라 움직인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기본적인 이러한 두 가지 유형의 움직임에서 나타나는 손과 발의 움직임은 다음과 같이 회전과 같은 손, 회전과 반대 손, 회전과 같은 발, 회전과 반대 발로 움직이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가장 기본적인 형태로서 이러한 이치만 깨달으면 모든 태권도 동작의 움직임을 이해할 수 있다고 보며 이러한 움직임을 2단계와 3단계와 같이 혼합적으로 움직이면 다음과 같이 변화된 움직임이 나오는 것을 알 수 있다.
2단계
3단계
여기에 나타나는 형상은 허리를 주축으로 하는 손과 발의 관계를 설명하며 모든 동작을 나타낼 수 있는 이치로서 태권도의 수련동작들과 관계가 있으며 이것이 바로 신체와 동작의 가장 기본이 되는 신체의 이치인 것이다.
물론 형상(움직이는 신체모양)이야 여러 형태로 나올 수 있지만 실지로 이러한 신체의 움직임을 바탕으로 태권도나 당수(공수)나 태극권 등 모든 무술의 행위를 대입해 보면 이러한 이치에 어긋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2단계와 3단계는 앞으로 지도자 연수 과정에서 실기 동작의 원리에 들어가서 실습을 하면 저절로 이해가 되는 자연히 나오는 동작이므로 여기서는 이론적인 텍스트 설명만 한다.
이러한 신체의 움직임은 누구나 이해하고 동작(수련)할 수 있는 신체에서 나오는 움직임이지만 이러한 이치를 깨닫고 움직임의 완성을 꾀하는 수련하는 것과 이치를 모르고 동작을 수련하는 것과는 동작을 이해하거나 몸놀림의 표현에서 상당한 차이가 날 것이다.
태권도의 원리를 말하는 사람들 중에는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손이 곡선으로 움직이니까 원이고, 허리가 돌아가니까 원이고, 관절이 돌아가니까 원이요, 팔이 비틀어지니까 원이라고 또 달리기를 해도 원의 움직임이 나오니까 신체 운동의 한 형태인 태권도의 동작 또한 원에서 나온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본인은 그런 주장(해석)은 태권도의 동작을 물리적인 신체의 운동 원리로만 보는 주장(해석)이라고 본다. 그러나 정신과 전통의 의미가 담긴 신체 움직임의 표현으로서 태권도의 원리를 설명할 때는 다음과 같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 원래 우리의 전통 사상을 좀더 자세히(세분)구분한다면 원(圓) 방(方) 각(角)으로 표현할 수 있는데 원(圓)은 하늘, 방(方)은 사람을, 각(角)은 땅을 뜻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차후 세부(첨부)적인 논의를 하도록 하겠다. -
사상과 민족성과 정서의 표현에서 원이 나오고 신체의 움직임(흐름)에서 원의 움직임으로 태권도의 수련동작이 나오므로 원을 통하여 태권도의 원리와 전통의 원리를 파악하고 사상과 신체의 합과 조화에 따르는 신체의 이치를 깨닫고 보면 태권도는 정신이나 전통을 바탕으로 하는 의미로 원의 흐름을 근본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아니 주장할 수 있다.)
원의 흐름은 동작의 원리에 해당되지만 여기에 철학적 의미를 부여하여 우리의 내면적 느낌 감각 몸놀림 등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고유의 민족사상과 연결이 된다. 그러므로 사상은 민족성이 담긴 정서로 정서의 표현은 원의 형태와 성질로 나타나며 이러한 형태와 성질은 신체의 움직임(흐름)을 통하여 태권도의 동작으로 나타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태권도의 동작은 원에서 나온다고 설명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 직선으로 보이는 수련 동작들도 그 근원을 찾아가 보면 모두 원에서 나오며 강권의 단순한 기법의 수련동작들도 원에 의한 성질을 이해하면 상대의 힘을 이용하여 밀고 당기고 하는 유권의 변화로 응용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체에서 나오는 움직임을 외형적으로 볼 때는 각 관절의 회전에 의한 동작의 발생(표현)이겠으나 바탕이나 원리 등에 나타나는 의미와 연계하여 볼 때는 태권도의 수련동작이 원에서 나온다(-정서가 베어 있다는 -)는 말의 의미는 달라진다.
따라서 이와 같이 원을 바탕으로 태권도를 설명하여야 만이 전통무도 태권도의 이론이 정립되며 이로 인해 현재 경기화된 태권도의 문제점(이론?)이 재 정립(개선)될 것이고 그래야만 세계화된 스포츠 태권도(경기 화)로 지속적인 발전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원의 원리에 의해서 표현되는 동작으로 태권도 수련을 하면 수련의 과정부터가 달라지게 되는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정립된다.
1. 태권도에서 모든 수련동작은 원에서 나온다
따라서 위와 같은 원리에 의해서 태권도 수련에 의해서 다음과 같이 무도 태권도의 수련 이론(방법)이 재 정립된다. 1, 동작의 표현에서 강적인 개념이 유적인
개념으로 바뀐다.
신체의 움직임(흐름)에서 원의 움직임으로 태권도 수련동작이 나오고 사상과 민족성과 정서의 표현에서 또 한 원이 나오므로 원을 해석하면 전통의 바탕과 무도의 원리를 밝혀낼 수 있으며 밝혀진 원리를 태권도에 접목하므로 현재 스포츠화(경기화)된 태권도가 명실상부한 전통 무도 태권도로 재 정립되는 것이며 이는 세계화된 태권도의 이론을 확고히 하는 것으로 무도 태권도의 중심 이론은 원의 원리이다.
우리는 무도를 통해서 수양되어지는 정신이나 스포츠를 통해서 얻어지는 정신을 통 털어 운동정신으로 표현한다. 그러나 무도는 무술로 행하는 정신이 있고, 스포츠는 스포츠대로 스포츠 정신이 있다.
무도와 스포츠의 정신은 부분적으로 일치하는 점도 있지만 서로 다른 점도 많다. 따라서 이것은 서로의 장점을 참고해 보완은 할 수 있어도 각각의 특성상 동일시될 수 없으며 스포츠라는 개념을 통한 한 개인의 부분적인면은 보충할 수 있지만 국민적 밑바탕의 정서를 감싸기에는 사상적 측면으로 미흡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정신의 차이는 운동종목의 선택에 따라서 수련의 방법이나 과정 등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 무술의 수련은 그 운동이 내포하고 있는 이상과 목적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수련의 형태와 과정이 달라지는 것이다.
즉 무도와 격투기 스포츠 등은 정신적으로 그 지향하는 바가 다르므로 수련의 과정이나 형태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오늘날 얻고자 하는 목적이 다르면 운동의 방향과 결과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무도정신에 의한 수련과 격투기나 스포츠정신으로 하는 운동에 동일성을 부여하여 무도의 수련과 일상의 건강 유지를 위해 하는 운동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혼동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무술 동작들에 대한 수련 의미와 방법과 과정이 있고 스포츠는 또 그 나름대로의 과정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수련은 서로 참고 할 수는 있겠으나 엄격히 따진다면 근본적인 정신의 바탕 상 혼용될 수는 없는 것이다고 본다.
이러한 것을 동일시하게 되면 수련과 정신에서 오는 괴리가 발생한다. 다시 말하면 실기 수련에 있어서 무도의 정신으로 수련을 한다고 하면서 격투기나 스포츠와 같은 운동의 형태로 할 수는 없을 것이며 격투기나 스포츠를 하면서 무도정신에 맞춰서 수련할 수는 없는 것이다.
태권도는 현재 스포츠화되어서 세계화는 되었으나 그로 인한 무도성의 퇴색은 태권도가 가지고 있는 수련을 통해서 서로가 생생하는 기능을 저버리는 결과를 가져왔는바 이것은 태권도 수련이 지향하는 목적과는 배치되는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세계화된 스포츠 태권도의 문제점을 보완하고 태권도가 가지는 본래의 수련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경기화되어 있는 태권도 수련을 정신 수양과 수련 이치(원리)에 입각한 무도 태권도로 재 정립을 하고 이를 수련의 근본으로 삼는 것밖에는 없다고 보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태권도 수련의 목적에 대한 방향을 무도 태권도 수련의 개념으로 설정하고 수련을 해야 태권도 수련에서 오는 수련의 의미(맛)를 알 수 있을 것이며 수련에서 얻고자 하는 바를 얻을 수 있다고 본다.
보편적으로 정신에는 보이는 정신과 보이지 않는 정신이 있다. 보이지 않는 정신은 사상 또는 추상적인 것을 추구하는 정신이라고 보며 보이는 정신은 끈기와 투지 지구력 참을성 용감성 등 강해지고자 하는 것이라고 본다.
스포츠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보이는 정신에 대한 함양은 귀가 따갑도록 들어 왔으며 그로 인해 그러한 것만이 우리의 정신 주체가 되어 버린 결과 그것이 전부인 줄로 착각하게 한다. 그러나 무도 태권도를 수련함으로서 얻어지는 정신으로서 보이지 않는 정신 안에 보이는 정신이 들어 있는 것이다.
언뜻 보기에 보이는 정신만을 무도 태권도 정신이라 이해한다면 그것은 큰 것을 버리고 일부분만을 취하는 것으로서 강해지는 것만이 무도태권도 정신의 전부가 아니며 그것은 무도 태권도 수련에서 얻어지는 정신의 한 부분으로서 넓은 부분을 접어두고 한 부분에 집착하는 것은 올바른 무도 태권도를 수련한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일제시대라는 암울한 식민시대를 접하면서 타국 무술인 가라데가 도입됨에 따라 우리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남(일본)의 정신까지도 흡수하게 되었으며 이것이 가라데에서 추구한 보이는 정신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현재 태권도 수련에서 추구하는 정신세계는 우리 고유의 정신세계인 안 보이는 정신 즉 "도"적인 개념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므로 전통적인 우리의 개념과는 어긋나 있다고 본다.
이러한 것을 구별 없이 전통이라는 이름 하에 태권도 정신으로 정의하고 수련하고 있는 우리에겐 고유의 전통정신보다는 타 류(가라데)의 개념이 강한 정신이 우리의 정신으로 둔갑하여 우리의 정신을 퇴색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우리 민족 고유의 정신과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무도 정신과는 의미상 틀리는 것으로서 태권도 정신이 잘못 이해되면 수련이 잘못 수련되고 수련이 잘못 수련되면 오히려 육체나 정신에 해가 되므로 태권도를 통한 태권도 수련의 목적에 부합하는 태권도 정신 개념부터 재 정립해야 한다고 본다. - 앞으로의 과제 - 태권도 정신에 대해서 정립 요 -
가라데의 동작 안에서는 우리의 얼이 들어있다 할 수 없을 것이다. 현재 수련되어 지고 있는 태권도 동작들이 상당부분 우리의 동작이라고 우기면서 수련하고 있는 일본문화(왜색)적 동작을 통해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왜 색의 정신이 흡수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태권도 수련을 통해 진정한 우리의 민족 의식이 녹아 있는 우리의 정신을 느끼고 간직하고자 하기 위해서는 하루라도 빨리 사상과 원리와 이치가 맞는 우리의 동작으로 태권도 수련동작들이 재 정립되어야 할 것이다.
전통의 문제점에서 역사와 연결되지 않음을 지적한 바가 있다. 앞에서 태권도 수련동작이 바뀌면(재 정립되면)태권도 역사는 순리대로 풀어진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신체의 이치와 동작의 원리를 통해서 문화와 역사적 차원에서 뿌리를 찾으면 하나로 통하고 그 뿌리에서 우리 것을 찾을 수 있다.
태권도에 있어서 우리는 해방 후 당수(공수)라는 이름으로 가라데의 형식을 도입한 것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며 여기에서 일본과 가라데와 우리와의 관계를 아니 생각할 수가 없다.
태권도의 역사에서 이러한 관계를 부정하고 구성한다면 우리의 태권도 역사는 어차피 조작으로 우길 수밖에 없다고 본다. 그러나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아래에 기술한 논리에 의해서 재 정립한다면 오히려 떳떳한 우리의 전통 무도 태권도라고 할 수 있다고 본다.
우리의 역사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중국과 일본 등과의 문화교류와 우리의 문화이전(- 한국 문화사에 의하면 -)등의 관계가 있었고 가라데는 우리의 조상들이 옛날에 전해준 무술이 일본 문화에 적응하며 발전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우리 것이다 하는 견해도 있을 수 있다.
이런 주장(논리)에는 전통과 관계된 측면에서 보면 역사적으로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본다. 하지만 동작 표현 상에서는 부정적인 측면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구별점이 상호 연계되어 제대로 분석과 설명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혼란만을 가중시키고 있는 것이다고 보며 따라서 이 부분에 대한 새로운 전제와 해석이 뒤따라야 한다.
여기에서 긍정적인 측면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은 우리의 현대사에서나 학자들은 고대 우리의 문화가 일본 문화에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이러한 문화의 전수나 교류의 증거는 일본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따라서 이러한 역사적 관계는 여기까지는 긍정적인 역사의 과정이라고 볼 수도 있으며 태권도에서도 이런 역사적인 관점에서는 본인도 긍정을 하고자 한다.
그러나 부정적(면밀히 검토를 해보면)인 측면에서는 실지로 역수입되는 과정에서 가라데의 동작들(법)을 직접 민족적 검증 없이 받아들이고(-각 계열관 원로 관장들 및 태권도 명명자인 고 최홍희의 근시안적 생각)이것을 우리의 전통과 연결시킴으로 오는 우리의 정서와는 맞지 않는 몸놀림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것이 전통의 부분에서 비합리적으로 작용하는 요소로서 부정적인 측면으로 나타나고 태권도의 역사(전통성/정통성) 시비에 휘말리는 것이다.
한가지 예를 들자면 우리가 원을 전해주었다가 그것이 네모로 변하여 왔다면 어찌 네모가 우리를 대표한다고 볼 수가 있겠는가?
아마도 이런 시각이라면 기모노나 스모도 우리 전통의 범위에 넣어야 할 것이다. 태권도에 있어서 전통의 시각에는 여기가 아주 중요한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문화의 교류라든가 전이에 대한 학설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전제한다면 우리의 태권도 역사는 가라데와 우리 전통과의 관계에서 역사와 관계된 부분은 감안하되 동작상에 나타나는 차이점만 제대로 파악되어 구별한다면 그것은 각자 자기의 전통(태권도와 가라데)의 흐름을 유지하는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고 본다.
바로 이러한 부분을 해소하는 것이 지금부터 논 하고자 하는 부분으로서 이것을 근거로 우리의 역사적 측면에서 조명을 하면 현재의 태권도 기존 수련동작들(법)의 이론과 역사적 관계는 다음과 같은 새로운 방향과 시각으로 접근할 수가 있다고 본다.(아주 중요함)
고대 문화의 역사적 관계는 우리의 문화가 가라데의 발생지라고 하는 오끼나와에 문화적인 영향을 행사했을 수도 있다는 추측을 하게 되는 대목으로서 이러한 것은 일본에서도 가라데와 스모는 고구려에서 전파되었다는(- 일본문화 전도록 일본 -)설도 있음을 상기할 때에 어느 정도 사실성을 부여할 수도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무술 문화의 교류 내지는 전이 등을 생각해 볼 수가 있으니 만약 한 중 일과의 관계에서 문화의 전이와 교류에 따른 관계가 있었다면 여기에는 우리 문화 또는 우리 무술과 동질성의 바탕이 있을 것이며 태권도와 가라데와의 사이에는 동류의 문화에서 오는 연관성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가 있다.
그러나 무술의 동작은 동작이나 표현법에 있어서 나라마다의 사상과 민족성과 환경에 의해, 나름대로의 형식과 표현법으로 변화되는 것이다고 본다.
그러므로 이것은 고대사로 보면 우리와 같은 또는 유사한 바탕으로서 우리와 관련이 있는 우리의 것이라 볼 수도 있는 것이지만 현대사로 보면 환경이나 민족성의 표현에 따라서 우리와는 멀어진 동작이나 표현법인 것으로서 가라데의 원리와 이론과 동작법은 일본 민족성과 환경에 의하여 변하여 온 것이거나 아니면 타국에서 변하여 온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이것은 고대의 역사에서 말 해 주듯 우리와 같은 동류 문화의 일 부분이라고 볼 수도 있으니 여기에는 우리 문화 또는 우리 무술과 동질성의 바탕이 있을 할 수도 있으며 이는 가라데와 태권도는 동류의 무술이라는 바탕으로서 일본 가라데 안에 있는 문화적 요소에는 일본 문화의 요소와 우리 문화의 요소가 들어 있을 것이라 생각할 수가 있다.
그렇다면 가라데의 동작은 우리문화(정서)와 관계가 있는 바탕이나 문화가 환경이나 상황에 따라서 변하여 왔으므로 그 형태나 양식 안에 기초적인 근거나 바탕이 남아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을 토대로 가라데 동작 안에 있는 원리와 이치에서 우리와 동질성이 있는 요소를 찾아서 우리의 근거로 삼은 다음 고대사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문화와 지형적 환경에 따른 변화를 감안하여 추리한다면 우리의 민족성과 환경에 따른 동작표현이 구별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그렇게되면 우리에게 유입된 가라데 동작을 통하여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할 수가 있다. 신체에서 나오는 무술동작의 원리를 밝힘으로 해서(- 신체의 이치 -) 신체의 움직임에서 나오는 원의 방향에서(- 손의 세 가지 방향 -) 가라데의 동작이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
즉 가라데의 동작은 신체의 움직임에서 나오는 원에서 나온다는 이치 말이다.
이 원은 가라데 동작뿐이 아니고 신체에서 나오는 모든 움직임의 방향을 설명할 수 있는 그러한 동작의 원리로서 이것은 우리 무술동작에도 해당된다고 볼 수 있는 신체를 통한 동류의 이치라고 할 수가 있다. 또 이러한 이치는 감각적 표현과 동작법과 운용법은 다르게 나오나 사상을 신체에 대입한 흐름의 일부분인 것이란 것도 파악될 것이다.
만약 이러한 원을 통한 동류의 이치가 가라데를 거쳐 오늘날 우리에게 나타난 것이라면 가라데의 동작법은 비록 남의 손에서 발달되어 우리에게 전하여 왔지만 우리의 일부인 것으로도 볼 수도 있으니 어쩌면 가라데를 통하고 당수(공수)를 통해서 우리의 원리를 찾을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도 있다고 본다.
우리의 고대사에서 나오는 수박이라는 명칭은 오늘날 전통과 관계된 역사의 연결에 없어서는 안 되는 명칭으로서 오늘날 이러한 수박에 연결 지어 고유운운하며 많은 단체가 저마다 전통을 말하고 있으나 근본 이치에 대한 원리와 어떤 형식인지 어떻게 표현하는지는 모르고 있다.
따라서 올바른 역사 이치에 맞는 전통 이것은 전통무술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꼭 필요한 것이지만 그 동안 아무도 전통무술에 대한 원리와 이치를 생각하지 못했던 것으로서 그 동안에는 신체의 움직임에 대한 원리를 몰랐으며 민족성의 차이를 구별하고자 하는 시도가 없었다고 본다.
때문에 남의 동작에 의한 억지 성의 수련(흐름)이 현재까지 이루어 졌으나 이제는 신체의 이치에서 나타난 동작을 바탕으로 신체에 대입된 천, 지, 인 사상의 움직임을 동작화하여 원리와 이치를 밝혀서 정신과 정서와 민족성이 담긴 순리와 이치에 따른 자연적 신체적 움직임으로 전통무도 태권도의 동작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것은 동작의 원형이며 몸놀림의 원형인 신체에 의한 동작발생의 이치와 정서적 표현의 이치를 근간으로 한 사상을 근본으로 하고 민족적 정서를 바탕으로 한 동작의 원리와 이치를 알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원리와 이치를 설명하여 주는 원의 흐름은 전통무도 태권도의 기본 바탕(원리)을 설명하는데 무리가 없다고 보며 이러한 원리는 정서와 신체의 이치에 의한 원의 흐름에 따른 것이며 이로서 전통의 뿌리와 무술의 원리와 역사의 연결을 이어 주는 동작원리를 알게 되므로 우리의 정서가 담긴 동작을 나타낼 수가 있다고 본다.
신체의 이치를 분석한 원의 원리는 우리의 무예에 나오는 금강역사상의 동작이나 무예도보통지의 그림 등을 설명하고 재현할 수 있는 원리와 이치로서 신체의 움직임을 나타내는 무도 태권도의 원리에 해당되는 원형이라 정의할 수가 있다고 본다.
현실적으로 오늘날의 태권도동작은 정서적인 면이나 감각적인 면에서 우리의 한국적 바탕의 흐름을 표현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무도를 위한 원리나 이론을 바탕으로 하는 기술적 부분에서도 근본이 되어 있지 않다.
이것은 고유의 정서와 전통의 본질과 무도의 본질을 흐리게 할 우려가 있다. 전통원리와 무술원리를 모르니까 즉흥적 이론이 곧 전통과 무술의 이론으로 변질되어 전통무도 태권도를 가르친다는 지도자가 전통과 연계된 수련과 설명을 할 수가 없으니 이는 바른 전통과 바른 무도를 실현하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새로이 정립되는 무도 태권도의 기본 원리가 되는 원의 원리에 의하면 우리 무예에 전통의 뿌리와 무술의 원리와 역사의 연결을 이어주는 것으로서 원의 원리 안에서 사상을 근본으로 하는 민족성의 표현으로 숨겨진 무술(태권도)의 이론을 바르게 나타낼 수 있다고 본다.
이것은 기존의 태권도 수련 동작들(법)에서 느끼지 못했던 원리와 이론에서의 미흡함을 채워줄 뿐만 아니라 역사적 고증과 주변의 상황을 고려하여 태권도의 동작이 왜 그렇게 구성되고 표현이 되는지에 대한 대답은 물론 인체를 중심으로 하는 방어와 공격의 이치에 의한 원리와 내면적 감정 표현들의 타당성 또 한 알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전통의 원리를 이해하고 태권도 수련에 반영하여 전통의 근본을 찾는 다면
1, 태권도 수련의 바탕이 달라지므로
원리가 달라지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수련의 과정이 달라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 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신체를 통한 원의 원리가 밝혀짐으로 해서 그 내용이 새로운 시각으로 파악되며 그 동안 이러한 것이 정리되지 않고 제대로 수련되지 않은 것에 비한다면 세계무도 태권도 연맹에서 무도 태권도 이론으로 재 정립한 태권도 이론(원리)이 기존의 태권도에 있어서 가라데(일제)의 잔재를 청산하며 고유의 정신과 전통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고 보며 이는 전통무도 태권도의 원리와 이론은 물론 우리의 무예의 근본 원리를 찾은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원의 원리는 신체와 동작 바탕에 존재하였던 근본의 이치이며 순수한 우리의 흐름에 의한 것이니 오히려 가라데 동작을 수용할 수 있는 원리로서 그 동안 몰랐던 부분이 찾아진 태권도 수련동작의 원리로서 전통무도 태권도의 근본바탕을 이루는 근본 원리라고 단언할 수 있다.
따라서 이치에 맞는 신체의 흐름에 따라 논리와 순리에 맞는 과정과 동작으로 또 한 동작이 갖는 철학적 의미를 알고 정신을 지키며 수련할 것인가?
아니면 형식적 동작으로 신체적인 기법만을 익힐 것인가? 일제(외세)의 잔재를 청산하고 우리의 민족적 자존심을 세우는 방법이 무엇인가?
어느 것이 우리의 전통을 나타내고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는지 옳은 것을 지도하여야 하는 지도자의 입장에서 심각하게 고민하고 생각할 때라고 본다.
위에서 거론한 원의 원리에 의해서 재 정립되는 무도 태권도의 이론을 접하는 순간 태권도에 있어서 바른 전통과 수련을 위한 준비과정은 끝났다고 보며 실행의 단계만 남았다고 본다.
태권도 수련의 목적이 자기방어(호신)에 있다 하지 않을 수는 없으나 그래도 고유의 맥을 찾아 전통의 의미를 파악하고 올바른 원리와 이론으로 올바른 동작들(법)을 수련하여 태권도 수련을 통한 인격(人格) 수양(修養)과 도(道)를 향한 자기발전(自己發展)의 계기(契機)로 삼아야 진정한 태권도 수련이라고 할 것이다.
전통의 문제점에서 역사와 맞지 않음을 지적한 바 태권도에 있어서 주장하는 역사론은 가라데 또한 우리 문화의 전달이나 교류에 따른 것으로서 우리 것이나 진배없다 하는 논리로 당연한 듯이 가라데 동작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데 이와 같이 이치에 맞지 않는 역사 동작 몸놀림 등으로 전통을 이야기하기보다는,
가라데 동작을 분석하여 나온 원의 이치로서 그 안에 숨어 있던 원이라는 동류의 이치를 바탕으로 동작의 이치를 구하고 여기에서 우리의 원리와 이론을 밝혀 우리의 정서가 나타나는 이치와 동작법을 찾아낸 것이라는 해석과 함께 자연스러움과 연결 적 표현이 담긴 고유적 몸놀림과 함께 태권도 수련을 위한 동작과정을 나타낼 수 있으니 이러한 사실은 역사적 관점에서도 형식과 틀에 의한 가라데 동작을 분석하여 신체에서 나오는 자연적인 동작(수련)법을 발견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우리 태권도의 바탕과 가라데의 동작 바탕에서 동작을 구한 것으로서 가라데의 수용과 함께 태권도의 발전과정을 재 조명한다면 현실에 맞는 역사적 이해관계를 설정할 수가 있을 것이며 이는 고대사와 현대사를 잇는 역사의 고리로서 확고한 설명이 될 수가 있다고 본다.
지금까지 기술된 내용은 앞에서 밝힌 바와 같이 현재 수련하고 있는 태권도 동작의 수련결과에 따른 문제점(원리, 가라데와의 관계)등을 분석하여 무도 태권도의 이론으로 정립한 이론(논리)으로 이에 따른 실기과정은 본 세계 무도 태권도 연맹에서 실시하는 지도자 연수과정을 통해서 전파(전수)를 할 것입니다.
이상으로 개괄적인 무도 태권도 이론에 대한 설명을 마치면서 무도 태권도가 스포츠화(경기화)된 태권도에 있어서 미흡한 이론 부분을 보완하여 명실상부한 세계화된 태권도로 지속적인 발전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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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 정립 적으로는
그런 다음 전통 무도 태권도로 재 정립하기 위해 위에서 거론되고 문제시되었던 동작을 어떻게 고치거나 새로 만들어야 되는지에 대해서 정립을 하고 정립된 근거에 의해 각 동작에 대해서 민족 의식(정서가)이 녹아 있는 철학(사상)적 의미부여하여 각 동작이 유기적 관계를 가질 수 있도록 새로운 품새를 만들고 겨루기에는 실전성에 입각한 겨루기 기술(동작)을 접목한 무도 태권도를 재 정립하고 보급한다.
그 방법으로는
▶.연수 구분
▶.연수과정별 연수기간
▶.연수자격 자격 부여 각 연수 기수별 연수 희망자가 많을 경우에는 연맹에 가입한 회원 중 정회원, 일반회원, 일반인의 순서에 의해서 연수자격을 부여한다.
세계 무도 태권도 연맹(WMTF)의 도증/道證(修證)과 WTF의 단증/段證(級證)의 차이점
▶. 수/도 증과 급/단 증의 차이점
▶. WTF의 급/단 증과 WMTF의 수/도 증의 차이점
1. 증의 이름 및 뜻과 역사와 이론(철학)이 다르다.
▶. 심사 비 사용 내역
※. 연맹 운영 경비를 뺀 잉여금을 기준으로 아래 항목의
기금은 우선 배정한다.
▶. 세계 무도 태권도 연맹의 수(SU) 및 도(DO) 체계
신 성 환
세계무도태권도연맹(무도태권도정립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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